당신은 푸른 고래처럼 오시고 / 노태맹

물 아래 가라앉은 저 배는 이제 물의 질료에 가깝게 되었나이다. 기억의 갑판에 들러붙어 있던 해초와 딱딱한 껍질의 슬픔도 물의 형상에 거의 가깝게 투명해져 있나이다. 천천히 헤엄치는 푸른 물고기보다 더 느리게 태양의 기둥들이 흔들리며 수면에서 가끔씩 발을 내리나, 허나 이제 그 발길이 더 무슨 위로가 되겠나이까? 물은 빛의 영토가 아니고 빛은 희망의 영토가 아니어서.//그러니 당신 뜻대로 하소서./우리는 당신의 얼굴을 흔들리는 수면 처럼 알지 못하니./우리가 보고 있는 당신은 지금의 당신이 아니고/우리 앞의 당신은 지금 여기의 당신이 아니어서/당신을 흐릿한 수면 처럼밖에 알지 못하니//하여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오지 않은 과거에서도 오고/이미 온 미래에서도 푸른 고래처럼 오는 그대여./당신의 뜻대로 하시되/들리는 모든 소리를 당신의 목소리로만 헤아리는/물 아래 가라앉은 배와 그 속에 잠든/그 그리운 이름들을 불러주소서.

「이팝나무 가지마다 흰 새들이」(2021, 한티재) 부분

이 시의 부제는 ‘레퀴엠 1-3’이다. 라틴어인 레퀴엠(requiem)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미사 음악이다. 그 가사의 첫마디는 다음과 같다. ‘Requiem aeternam donna eis, Domine(천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옵소서)…’ 시의 제목을 보며 하게 된 짐작대로, 이 시는 세월호 희생자들, 시인의 말에 따르면 “이유도 모른 채 물속에 갇혀 흰 파도가 된 어여쁜 천사들”을 위한 진혼곡이다.

“세월호 사건은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승객 304명(전체 탑승자 476명)이 사망·실종된 대형 참사를 일컫는다. 기록에 따르면 세월호가 선수를 제외하고 사실상 완전히 침몰된 시간은 오전 11시 20분 정도였는데, 세월호 실종자 수색을 위해 잠수요원이 본격적으로 투입된 것은 사고가 난 지 8시간이 지난 4월 16일 오후 5시 정도였다. 또 세월호는 사고 초기 선체가 왼쪽으로 기울어졌지만 3분의 2 이상이 해상에 떠있는 상태를 상당 시간 유지하고 있어 이 시기 구조장비의 빠른 투입이 필요했다. 그러나 선체 부양을 위한 리프트백 투입은 4월 18일에야 이뤄졌고, 야간구조작업을 위한 오징어잡이 어선은 침몰 나흘째, 잠수부들의 이동을 돕는 대형바지선은 침몰 5일째인 4월 20일에야 뒤늦게 투입됐다.” 몇 번을 읽어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뒤늦은 구조작업이다. 그때 구원의 손길들은 모두 어디에 있었나?

“동시대인들의 삶을 재현해보고 싶었던” 시인은 니체의 말을 옮긴 들뢰즈의 말을 인용해서 이렇게 쓴다. “우리의 비탄이 우리의 올가미가 된다. 비탄으로 우리는 시를 쓰고, 시는 다시 그 비탄의 불씨를 되살린다.”

신상조(문학평론가)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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