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지금 위치로 이전, 터잡아||1960년대 섬유거래량 전국 절반 차지||2016년



▲ 1926년 서문시장 모습. 조선 제27대 왕 순종의 국상 기간이어서 모두 백립(흰 베로 만든 갓)을 쓰고 있다. 대구교육박물관 제공.
▲ 1926년 서문시장 모습. 조선 제27대 왕 순종의 국상 기간이어서 모두 백립(흰 베로 만든 갓)을 쓰고 있다. 대구교육박물관 제공.
한강 이남 최대 규모 전통시장인 서문시장이 올해로 이전 100주년을 맞았다.

지난 한 세기 상인들의 삶의 애환을 고스란히 간직한 서문시장은 대구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대구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축제를 준비 중이다.

근현대사 속 대구시민과 희노애락을 함께 해온 서문시장은 3만4천㎡ 면적에 8개 지구 4천500여 개 점포에서 1만여 명이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다.

1920년대 초 대구 시가지가 개발되면서 서남쪽에 있는 천황당지라는 큰 못을 매립해서 옮기 것이 현재 서문시장이다.

1922년 9월 공설시장 개설 허가를 받아 1923년 4월 지금의 위치로 이전했다.

▲ 설을 앞두고 사람들로 붐비는 서문시장. 대구교육박물관 제공
▲ 설을 앞두고 사람들로 붐비는 서문시장. 대구교육박물관 제공
6·25전쟁 이후 피난민에 의해 인구가 급증하고 대구의 각종 직물공장을 배경으로 전국 최대 규모의 의류·포목 도매시장으로 성장했다.

1950년 후반에는 대구지역 15개 시장 총 거래량의 40%를 차지할 만큼 호황을 누렸다.

1960년대 말 경상도·충청도·전라도의 상권을 움직이는 중심이었고 섬유 거래량은 전국의 절반 가량을 차지했다.

정부의 대구 섬유산업 육성 정책에 따라 제일모직, 섬유복합단지, 한국 나일론 등 총 7개의 대형 섬유공장이 대구에 들어섰다.

대구가 섬유도시로 우뚝서며 서문시장 또한 전국 최고의 포목(베와 무명)시장이 된 것이다.

▲ 오늘날의 서문시장 모습. 상가에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등을 설치하며 현대화로 거듭났다. 대구일보DB
▲ 오늘날의 서문시장 모습. 상가에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등을 설치하며 현대화로 거듭났다. 대구일보DB
과거 수차례의 크고 작은 화재 발생 이후 서문시장은 상가 내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주차장 등을 설치·건립하며 분위기 쇄신이 들어갔다.

지금은 2016년 화재로 전소한 4지구 역시 2025년까지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서문시장 4지구재건축조합은 지난해 7월 대구시 교통영향평가 재심의에서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전국적인 관광특구를 꿈꾸며 2016년 6월 국내 최대 규모의 야시장을 개장했다.

건어물 상가 앞 도로 350m 구간에 80여 개의 점포가 손님을 맞았다.

개장 첫날부터 10만여 명이나 몰리며 대박을 터트렸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7년 서문시장 야시장을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했다.

지난해 말에는 한국관광공사의 ‘2023~2024 한국관광100선’으로도 뽑혔다.

올해는 오는 31일 야시장이 개장되며 매일 저녁 관광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예정이다.

대구시는 다음달 1일 서문시장 100주년 기념 행사를 진행한다.

서문시장 5지구 입구 앞에서 축제를 열고 축하 공연과 100주년 역사 전시회 등 다양한 이벤트를 선보일 계획이다. 서문시장상가연합회도 이날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자체 쇼핑백을 만들어 시장을 찾는 손님들에게 무료로 나눠줄 예정이다.

서문시장상가연합회 관계자는 “시장을 찾아준 시민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며 “또 다른 100년으로 나아가는 대표 전통시장이 될 수 있도록 상인 모두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명환 기자 kmh@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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