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이사부의 아들이자 진흥왕의 동생, 6대 풍월주였으나 미실의 그림자

▲ 신라시대 세종의 아내 미실의 정인으로 기록되고 있는 진흥왕의 릉.
▲ 신라시대 세종의 아내 미실의 정인으로 기록되고 있는 진흥왕의 릉.




신라 화랑들의 우두머리 제6대 풍월주 세종은 진흥왕의 동생이자 신라 최고의 색공지신으로 불리는 미실의 남편이다.



세종은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뛰어난 무술솜씨를 갖추어 전쟁에서 많은 공을 세운 장군이기도 하다. 세종의 아버지는 신라장군 이사부이고, 어머니는 진흥왕을 낳은 지소부인이다. 진흥왕과 어머니는 같지만 아버지는 다른 형제이다.



진흥왕은 누구보다 세종을 동생으로 잘 보살피면서 가까이에 두고 막내동생이라 부르면서 세종이 잘못해도 책망하지 않고 아껴주었다.



세종은 미실을 너무 사랑하여 일생을 미실의 그림자로 살았지만 인물은 공명정대하고, 형인 진흥왕에게 충성을 다했다. 또 어머니인 지소태후에게 정성으로 효도를 하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아 화랑들에게 많은 우러름을 받기도 했다.

▲ 신라시대 세종의 아내 미실이 왕으로 등극하게 하고, 정인으로 기록되고 있는 진지왕의 릉.
▲ 신라시대 세종의 아내 미실이 왕으로 등극하게 하고, 정인으로 기록되고 있는 진지왕의 릉.




◆세종의 탄생

세종은 신라 발전기의 최고 실력자를 길러낸 화랑의 제6대 풍월주 출신이다. 세종의 아버지는 지증왕 때 우산국을 지혜를 발휘해 신라로 병합하고, 진흥왕을 7세에 왕위에 오르게 하며 최고의 실력자로 떠올랐던 장군 이사부다.



또 세종의 어머니는 진흥왕의 어머니로 10년간 섭정을 담당했던 여걸 지소부인이다.



지소부인은 법흥왕의 딸로 법흥왕의 동생 입종갈문왕과 결혼해 진흥왕이 된 삼맥종을 낳았다. 지소부인은 입종이 죽은 뒤 아버지의 권유로 박영실과 결혼을 했지만 마음이 맞지 않아 헤어졌다.



지소부인은 어린 아들 삼맥종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힘이 있는 실력자를 물색하던 중 지증왕때부터 우산국을 점령하며 지혜와 뛰어난 무술로 주목받았던 장군 이사부를 떠올리고는 곧바로 그와 결혼에 골인했다.

▲ 신라시대 세종의 아내 미실이 마지막으로 왕으로 등극하게 하며 그의 후궁이 되었다고 기록하는 진평왕의 릉.
▲ 신라시대 세종의 아내 미실이 마지막으로 왕으로 등극하게 하며 그의 후궁이 되었다고 기록하는 진평왕의 릉.


지소부인은 타고난 애교술로 이사부를 완전히 자기사람으로 만들고는 어린 아들 삼맥종을 왕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어 지소부인은 이사부와의 사이에 세종과 숙명궁주 등 삼남매를 낳았다.



세종은 지혜롭고 용맹스런 아버지 이사부를 닮아 어릴때부터 총명하여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특히 세종은 아버지로부터 검술과 용병술에 이어 잡학에 이르기까지 삶의 기술도 다양하게 배워 어리지만 심계가 깊은 청년으로 성장해갔다.



세종은 많은 책을 읽으면서 점차 말수가 줄어들어 침착한 청년으로 자라면서 왕이 되어 위엄을 갖추어가는 진흥왕 삼맥종을 잘 따르면서 자연스럽게 나라의 일을 하나씩 배워갔다.



진흥왕도 총명하면서도 자신을 잘 따르는 세종을 막내동생처럼 귀여워하면서 전쟁터에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많은 것을 가르쳤다.



세종은 이사부의 기질을 빼다박았다고 할 정도로 닮아 무인의 기질과 함께 잔꾀를 잘 부리는 병법의 귀재로 떠올라 진흥왕은 전쟁터에서는 이사부와 함께 세종을 늘 옆에 두었다.

▲ 세종이 미실의 등에 밀려 화랑이 되어 전쟁터를 누비던 전쟁터의 장면 그림.
▲ 세종이 미실의 등에 밀려 화랑이 되어 전쟁터를 누비던 전쟁터의 장면 그림.




◆빗나간 사랑

세종이 성년이 되자 지소부인은 세종의 결혼을 위해 며느리가 될 사람을 고르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큰아들 삼맥종이 왕위에 올라 있으므로 형제끼리 우애를 나누면서 갈등을 빚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권력에 집착하며 세력을 키우려는 귀족의 자녀들은 아예 대상에서 제외했다.



주로 성골의 자녀, 진골 대원신통의 맥을 이어갈 처녀들을 위주로 뛰어난 처녀 20여 명을 골라 세종에게 선보였다. 지소부인은 “네가 마음에 드는 처녀를 고르기만 한다면 며느리로 삼겠다”며 우선 세종이 처녀들의 면모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게 자리를 마련했다.



그런데 네 번째 마주한 미실을 보자말자 세종은 미실의 빼어난 미모와 사람을 빨아들일 듯한 매혹적인 말솜씨에 혼을 빼앗겨버렸다. 더구나 가야금을 뜯으면서 은근한 추임새로 들썩이는 어깨춤과 가끔씩 길고 흰 목을 살짝 돌려 흘기듯 바라보는 눈길에 어쩔줄 몰라했다.

▲ 세종이 활약하던 당시 신라의 사회상을 상상하게 하는 토기의 토우.
▲ 세종이 활약하던 당시 신라의 사회상을 상상하게 하는 토기의 토우.


세종은 열 두어명의 처녀들을 더 만나기는 했으나 미실의 모습이 겹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도 않았다.



두어명씩 더러는 한 사람씩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식으로 진행된 맞선보기가 끝나기 무섭게 지소부인은 세종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어디 네 마음을 움직이는 여자가 있더냐”는 물음이 끝나기 무섭게 세종은 “어머니, 미실, 미실이라는 아가씨만 있으면 저는 모든 일을 다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며 미실과 혼인하게 해달라고 졸랐다.



지소부인은 속으로 “그럴 줄 알았다”면서 은근히 미소를 흘리며 “그래 당장 미실과 혼인을 준비하도록 일러두겠다”고 했다. 어머니의 허락을 받은 세종은 행복한 나머지 잠이 오질 않았다. 미실과 결혼한 세종은 꿈길을 걷느라 바깥출입조차 아꼈다.



그러나 세종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미실이 세종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지소부인의 부름을 자주 받게 되었는데, 그만 지소부인의 비밀을 누출하면서 위기에 몰려버렸다. 지소부인이 자신의 딸 숙명궁주를 진흥왕의 왕비로 만들기 위해 진흥왕의 왕비였던 사도부인을 출궁시키겠다는 말을 흘려들은 미실이 이모인 사도부인에게 이를 고했다. 사도부인이 진흥왕에게 울면서 지소부인의 뜻을 일러바치면서 살려달라고 매달렸다.

▲ 세종의 아내 미실이 후궁이 되었던 진평왕릉의 고목.
▲ 세종의 아내 미실이 후궁이 되었던 진평왕릉의 고목.


진흥왕이 어머니 지소부인에게 이를 고하며 안된다고 고집을 세우자 화가 난 지소부인이 미실을 출궁시켜 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딸 숙명궁주를 아버지가 다르지만 오빠인 진흥왕의 왕비로 삼아버렸다.



졸지에 궁에서 쫓겨나 외톨이가 되어버린 미실은 실의에 빠져 바람에 일렁이는 갈대밭을 오가며 눈물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이때 소식을 들은 화랑 사다함이 찾아와 사랑을 고백하고 미실과 사랑에 빠졌다.



미실은 다시 사다함과 달콤한 사랑에 함몰되어가고 있었다. 이를 시샘한 세종과 진흥왕은 사다함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백제군이 관산성을 함락하려 한다는 소식이 날아들자 진흥왕은 이사부를 앞세워 적군을 물리치게 했다. 이때 사다함도 화랑의 깃발을 들고 전쟁터로 나아갔다.



세종은 사다함이 전쟁터로 나가고, 다시 혼자가 된 미실을 불러달라고 지소부인에게 간청했다. 지소부인은 아들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기가 민망해 다시 미실을 궁으로 불러들였다.



그러나 미실은 궁으로 돌아와 세종을 만나면서 예전과 같이 뜨거운 시선을 주지 않았다. 미실은 다시 궁으로 돌아오면서 다짐을 했다. ‘내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꾸려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 권력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실력자가 되고 말겠다’고 굳게 맹세했다.



미실은 세종에게 “나는 옛날의 미실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실 때만 당신의 여자가 될 수 있어요”라며 조건을 내걸었다. 그리고는 화랑세력을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원화가 될 수 있도록 왕에게 도움을 청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세종을 따르는 화랑의 무리들을 자신의 수하로 부릴 수 있게 했다.



미실은 드디어 진흥왕의 마음도 얻어내어 원화가 되었다. “왕이 전쟁터에 나가시거나 출타했을 때 원화가 되어 당신의 자리를 안전하게 지켜드릴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고 꾀를 부렸던 것이다.



미실은 진흥왕과의 만남, 실력을 가진 화랑들과의 만남 등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거슬리는 남편 세종을 “전쟁터에 나아가 공을 세워야 당신의 자리를 안전하게 지킬수 있어요”라며 전쟁터로 내몰았다. 세종도 이를 다행스럽게 여기고 전쟁터에 나아가 많은 공을 세웠다.



세종이 전쟁터를 누비는 동안 미실은 진흥왕과 가까이 지내는 한편 태자 동륜과도 정인이 되었다. 바야흐로 색공지신 미실이 탄생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 진평왕릉의 고목이 늘어선 공원쉼터.
▲ 진평왕릉의 고목이 늘어선 공원쉼터.




◆세종의 전쟁

세종은 아버지 이사부로부터 전쟁에서의 실전을 몸으로 익히고, 병법 또한 지리와 기후, 사회적 환경에 맞춰 적절하게 펼치는 비법을 이론과 함께 실전에서 배웠다.



이사부는 무자비하거나 무턱대고 힘으로 싸우는 소모적인 전쟁은 거의 하지 않았다. 백번이든 천번이든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여건이 무르익었을 때 비로소 칼을 들었다.



또한 다소 피해를 입게 되는 경우가 있어도 나라를 위해 크게 얻을 것이 있으면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 전쟁에 임했다. 세종은 이러한 아버지 이시부의 이기는 전쟁법을 철저하게 따라 배웠다.



세종은 항상 승리하는 방법을 몸으로 익혔지만 마음으로부터 공명정대한 승리를 쟁취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사랑하는 미실로부터도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받고 싶어 전쟁에서 죽도록 싸워 이기려 했다.

▲ 세종이 화랑 풍월주가 되어 전쟁터를 누볐다. 화랑마을 입구의 화랑 동상.
▲ 세종이 화랑 풍월주가 되어 전쟁터를 누볐다. 화랑마을 입구의 화랑 동상.


전쟁터에서 세종의 활약이 두드러지자 진흥왕은 세종을 제6대 풍월주로 승격시켰다. 이러한 세종의 진정성에 감복한 화랑들은 마음으로 그를 따르면서 무리를 지어 몰려들었다.



세종은 아버지 이사부와 어머니 지소태후에게 효도했다. 전쟁터에서도 매일 일찍 일어나 아버지의 막사를 찾아 문안인사를 드리고, 멀리 궁성을 향해 인사하면서 형 진흥왕에게도 충성을 다했다.



그러나 미실의 마음은 이미 도를 넘어 권력욕에 깊숙이 빠져들어 색공지신으로 소문이 낭자할 정도로 남색을 탐하며 왕을 갈아치우는 실력자로 부상해버렸다. 세종은 가끔 정도에 벗어나는 미실의 선택에 대해 충고를 할 뿐 책임을 묻지 않았으며, 평생 미실의 그림자로 살다 역사의 뒤안길로 조용히 사라졌다.



*신라사람들의 내용은 문화콘텐츠 육성을 위해 스토리텔링한 것이므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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