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보다 두렵고 무서운 것

발행일 2022-01-19 14:03:2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

재작년 1월20일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최초 확진자가 나왔다. 만 2년이 지났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 소식 등에 일희일비하며 살얼음판을 걷듯 살아왔다. 그 끝이 언제쯤일지는 알 수 없다.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직장과 사회생활, 개인의 삶 등에서 엄청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대부분 사람이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지만,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졌다. 많은 자영업자가 문을 닫았다. 일부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부자에겐 재산을 증식할 기회가 더 많아졌다. 국내 명품 소비가 늘면서 주요 백화점의 올해 VIP 최상위 등급 연간 구매금액 기준은 2억 원을 넘었다. 이런 세상에 며칠 전 제법 긴 카톡 편지를 받았다.

“아이가 중학교 다닐 때 선생님 강연을 들은 엄마입니다. 이런 글을 드려도 될지 망설이다가 하도 답답해 톡을 보냅니다. 저는 혼자 남매를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들 아빠는 큰 애가 초등 5학년 때 교통사고로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홀로 식당 등에서 일하며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큰애는 중학교 졸업할 때 담임선생님 말로는 전체 2등이라고 했습니다. 고교 배정 후 반 편성 시험에서도 전체 10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했습니다. 고1 때 코로나로 재택학습이 많아지면서 모든 것이 뒤틀려버렸습니다. 저는 오전 10시쯤 일하러 나가 밤 9시가 넘어 들어옵니다. 엄마가 없으니 아이들은 저희끼리 밥 먹고 공부해야 했습니다. 큰아이가 인터넷 수업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많다며 학원에 보내 달라고 했지만, 요식업 종업원 형편에 그렇게 해 줄 수 없었습니다. 1학년 때 기초를 놓치고 나니 2학년부터는 학업에 흥미를 잃었습니다. 올해 3학년 올라가지만 이제 완전히 책을 놓았습니다. 저도 일하는 곳이 문을 닫아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나이가 많다며 받아주는 곳이 없습니다. 빚도 2천만 원이 넘는데 통장에는 이제 2백만 원밖에 없습니다. 아이는 종일 휴대폰과 컴퓨터로 게임만 하고, 둘째도 그런 오빠를 보며 공부를 안 합니다. 일 못 나간 지가 두 달이 좀 넘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어떻게 해버릴까 하는 나쁜 생각도 여러 번 했지만, 그런 생각을 한 저 자신을 다잡아 보기 위해 선생님께 편지를 씁니다. 아이만 보고 살았는데 이제 모든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아이가 다시 책을 잡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80년대 초반에 본 어느 외국 언론사의 보도 사진전이 생각났다. 나의 발길을 오래 머물게 한 사진이 기억났다. 월스트리트의 고도비만 백인과 기아 직전 피골이 상접한 아프리카 아이의 모습을 나란히 대비시킨 사진이었다. 제목이 ‘세계의 이면(裏面)’이었던 것 같다. 한쪽은 뱃가죽과 등가죽 사이의 간격이 너무 넓어져 죽고, 다른 한쪽은 그 간격이 너무 좁아 죽는 현실을 고발한 사진이었다. 코로나19는 그 보도 사진처럼 한 나라, 한 지역 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양극화’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19는 쓸쓸한 사람은 더욱더 쓸쓸하게 하고, 신나는 사람은 더욱 신나게 하는 상황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엄마의 편지는 ‘교육 격차’를 넘어 ‘지옥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단테는 ‘신곡 지옥편’에서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라고 했다. 코로나19보다 무서운 것은 ‘희망이 없다는 절망감’이다. 이 얼마나 끔찍한가.

원격수업은 학생들이 잘 따라와 준다는 전제하에서 대개 핵심 내용만 설명하고 넘어간다. 선행학습이 안 된 학생이나 평소 수업에 성실하게 참여하는 습관이 형성되지 않은 학생은 소통에 한계가 있고, 질의응답이 어려워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진 자는 사교육을 통해 격차를 더욱 벌리며 오히려 학교 안 가고 학원이나 과외를 시키고 싶어 한다. 저소득, 저학력 학생들을 위한 실효성 있는 지원 대책이 시급하다. 편지를 쓴 엄마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가정을 도와줄 수 있는 구제책도 나와야 한다. 여야 정치인은 선거라는 신선놀음에 빠져 재래시장 등을 우르르 몰려다니며 어묵만 먹을 뿐 지옥의 고통을 겪고 있는 국민은 제대로 못 보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소포클레스는 “인류 대다수를 먹여 살리는 것은 희망이다”라고 했다. 정부와 정치권은 복지 사각지대 발굴과 함께 실효성 있는 취약계층 구제책을 마련하고, 그들이 삶의 ‘희망’을 잃지 않게 하라.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