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문학」 (대구문인협회, 2020. 12)
물은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고 품어준다. 물은 생명의 전제조건이다. 음용수가 되기도 하고 밥을 짓기도 하며 세숫물이 되기도 한다. 험하고 더러운 것도 마다않고 보듬는다. 옷과 그릇에 묻은 온갖 티끌을 불평 없이 씻어내는 물은 성인의 도량을 가지고 있다. 반듯한 용기에 들어가면 반듯한 모양에 맞춰주고, 뾰족한 용기에 담기면 뾰족한 모양으로 변신한다. 상선(上善)은 약수(若水)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물이 너무 넘치면 홍수가 나고 물이 너무 부족하면 기근이 난다. 한없이 순한 물이라도 수틀리는 날엔 무엇이든지 깡그리 쓸어가 버리고, 비위가 맞지 않은 경우엔 폭포수가 돼 엄청난 힘으로 내리꽂는다. 세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대한 힘을 간직한 물이지만 항상 낮은 곳으로 임하는 겸손함도 아울러 가진다. 물을 잘 다스리는 치수를 제왕 리더십의 첫 손가락으로 꼽은 것도 물의 절대적 영향력을 잘 알고 있은 까닭이다.
알려진 대로 물은 온도 변화에 맞춰 변화무쌍하다. 상온에선 액체 상태로 있으면서 온갖 생명체의 존재요건으로 기능한다. 영하로 내려가면 고체 상태로 굳어져 부패를 막아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게다가 백도를 넘어서면 기체 상태로 변해 인류에게 소중한 에너지를 선사한다. 석탄, 석유, 가스, 원자력 등이 전기 생산의 주된 연료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그 뒤에 숨어있는 주인공은 증기, 즉 물이다.
강물은 낮은 곳을 찾아 육상의 물들이 모여든 물줄기다. 물줄기가 합쳐져 흐르는 강물은 당연히 물의 본성을 갖는다. 돌이나 오물을 던져도 화내지 않고 다 받아들인다. 돌에 맞으면 가슴에 상처가 날 법도 하지만 강물은 아픔을 삭이고 흔쾌히 수용한다. 겨울이 돼 강물이 얼면 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뱉어낸다. 모든 것을 마냥 받아주다가 보면 가끔 지치고 힘들 때도 있다. 시인은 강물이 화가 나서 얼어붙은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 화가 풀리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걸 알고 있다.
강물도 바다가 있어 천만다행이다. 무조건 강물을 안아주는 바다가 있어서 강물은 삼라만상을 기꺼이 품는다. 바다가 있기에 돌팔매를 맞고도 화를 삭일 수 있는지 모른다. 인생사에도 바다와 같이 믿고 의지할 무언가가 있다면 관용을 베풀고 포용할 수 있을 터다. 인간도 물을 닮은 성인이 되면 최선이겠지만 거기까진 과욕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바다만 돼 준다 해도 세상은 훨씬 더 아름답지 않을까.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