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 유심조~

…교회 십자가를 보니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올랐다. 부잣집 아들에게 크리스마스카드를 받고난 후 첫사랑의 포로가 됐다. 그를 만나러 교회에 나갔다. 그와 첫 키스를 하고 몸을 허락했다. 그날 이후 그는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실연의 아픔을 안겨주었지만 한시도 그를 잊을 수 없다. 그는 먼 친척인 부잣집 언니와 결혼했다. 그는 가업을 물려받아 사업을 크게 확장했다. 고향사람들은 그 언니를 통해 그의 회사에 취직했다. 남편도 그의 회사에서 간부로 일한다. TV뉴스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그의 회사가 부도났다고 한다./ 회사를 살리려고 간부들 집을 담보로 빚을 냈단다. 이제 길바닥으로 나앉을 판이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그에게 사정해보는 수밖에 없다. 멱살잡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초인종을 누르자 친척 언니가 나왔다. 그는 외유중이라 했다. 부도가 났지만 편해 보였다. 회사가 부도나도 개인재산은 손 댈 수 없다. 언니는 고급세단을 타고 쇼핑을 갔다. 그녀도 얼떨결에 따라갔다. 명품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했지만 거리낌 없이 샀다. 회사가 부도난 상황에서 심하다고 생각했지만 언니 생각은 결이 달랐다. 골치 아픈 회사 벌써 때려치우려 했다나. 고의 부도를 냈단 말인가. 백화점을 뛰쳐나와 무작정 걸었다./ 경주로 가족여행을 떠나려고 가족들을 소집했다. 가족여행은 처음이었다. 초등학교 수학여행도 못 갔다. 바람둥이 남자를 사랑한 것도 후회스러웠지만 아등바등 살아온 삶도 억울했다. 이제부터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기로 했다. 팔자는 길들이기 나름이다. 경주 인근에서 차가 퍼졌다. 가족여행은 엉망이 됐다. 정비공장에서 그 원인을 밝혀냈다. 연료탱크에 물이 차 있었다. 주유소에 가서 어필했다. 지난밤에 대청소를 해서 물이 기름 탱크로 흘러든 모양이란다. 견인비와 손해를 물어내라고 거칠게 항의했다. 그녀의 변한 모습에 가족들이 놀랐다. 좋은 사람에겐 좋지만 나쁜 사람에겐 좋게 대할 수 없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불현 듯 떠올랐다. 옛날 유행가만 부르고 살 순 없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적응하기 힘들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탓인지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매표를 노린 퍼주기 포퓰리즘이 한창이다. 이데올로기, 지역감정, 빈부격차, 세대갈등에 이젠 젠더이슈까지 불거져 가관이다. 살기 힘든 세상이다. 한숨을 내쉬며 먼 산을 바라봤다./ 황제의 안방이나 그 무덤 속도 구경하는 세상이다. 피라미드도 도둑들이 파갔다. 부귀영화가 덧없다. 도둑맞을 걱정도 없고 빚도 한 푼 없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인간의 삶은 한 조각의 구름이 일어나고 또 흩어지는 것이다. 뜬 구름은 정처 없고 또한 속이 텅 빈 것이니, 인간의 삶이란 것도 뜬 구름과 같다. 과도한 집착과 지나친 욕심이 불행을 불러온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행복이란 멀리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행복은 각자의 마음속에 상존한다.

가진 게 없다고 실의에 차 기죽을 필요도 없고, 가진 게 많다고 뽐내거나 오만할 이유도 없다. 재산이 많아도 쓰지 않으면 무용하고, 재산이 적어도 베풀고 나누면 유용하다. 재산이 많아도 그 마음이 옹졸하면 가난하고, 재산이 없어도 그 마음이 넉넉하면 부자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인생이다. 공감의 인식은 어렵지 않지만 깨달음의 실천은 쉽지 않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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