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환 객원논설위원

2019년 4월, 집권 민주당은 사개특위에서 공수처 법안과 검경수사권 조정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지정했고, 정개특위에선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에 함께 실었다. 패스트트랙 지정에서 법안 통과까지 여야 대치가 극한으로 치달으며 근 7년 만에 국회 공성전이 재발했다. 패스트트랙은 민생법안이 정쟁에 휘말려 장기간 표류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취지였지만 정작 그로인해 정쟁만 격화된 건 아이러니다.

공수처법은 권력층의 부정부패와 비리를 막자는 게 그 취지다. 고위공직자 및 그 가족의 직권남용, 수뢰, 허위공문서 작성 및 정치자금 부정수수 등의 특정범죄를 척결하고, 공직사회의 특혜와 비리를 근절해 국가의 투명성과 공직사회의 신뢰성을 높임으로서, 국민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검경수사권 조정법안은 검찰의 과도한 권한을 일부분 경찰로 넘겨줌으로써 양대 권력기관의 견제와 균형을 구축하자는 게 그 취지다. 검경수사권 조정은 검찰과 경찰의 수사구조 문제를 비롯해 그 권한을 어떻게 적절하게 분배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선거법 개정안은 이른바 연동형비례제를 도입하는 문제다. 정당 득표율에 걸맞은 의석을 각 정당에 안분한다는 점과 사표를 없앰으로써 민의를 왜곡 없이 반영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당락을 고려하지 않고 지지 정당에 투표하도록 유도한다는 점 등이 그 장점으로 꼽힌다. 연동형비례제는 합의 과정에서 ‘준연동형비례제’로 변형됐다. 비례대표 의석을 종전처럼 유지하되, 일부를 정당 득표율에 따라 연동형 캡 안에 넣고, 기존의 병립형 비례대표 의석 배분도 일부 존속시켰다.

패스트트랙에 얹은 법안의 취지와 목적은 겉보기엔 일견 좋아 보인다. 허나 그 취지와 목적이 선의라 해서 결과까지 다 좋은 건 아니다. 비록 그 결과가 좋다 하더라도 절차와 과정이 비정상적이고 독선적이라면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야당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무리하게 날치기로 통과시킨 패스트트랙 법안의 절차와 과정은 거대여당의 의회독재였다. 그 후에 전개된 상황도 꼼꼼히 살펴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성과평가를 통해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다.

공수처는 겉돌고 있다. 정권의 시녀 역을 맡아 사법부와 검경 및 행정부를 줄 세우고 삼권분립을 형해화시킬 것이라는 일부 법조계의 우려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검찰과의 갈등과 반목으로 당초 기대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을 뿐더러 기자를 비롯한 민간인에 대한 과도한 통신조회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법조인들과 법학교수들을 비롯해 일반국민들 사이에서도 공수처 폐지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는 실정이다.

검경수사권 조정도 수사의 혼란만 초래하고 있다. 정권 말기의 레임덕을 틈타 권력에 칼을 겨누던 검찰을 손 본 것인지, 지난 참여정부의 개인적 원한 때문에 검찰에 복수의 칼을 휘두른 것인지, 말 잘 듣는 경찰에게 힘을 더 실어주자는 것인지, 오만가지 옹졸한 의혹들이 불거져 나올 법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일부 여권 의원들 말마따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검경수사권 조정의 진정한 노림수였다는 의심마저 든다.

준연동형비례제는 만신창이가 돼 버렸다. 거창한 대의와 그럴듯한 명분은 어디에도 없다. 선거법 개정안의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집권 민주당은 위성정당을 만드는 꼼수를 써서 그토록 떠받들던 준연동형비례제를 단숨에 무력화시켰다. 여야 정당이 합의해 결정하던 전통마저 깡그리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던 이유가 오직 자기 정당의 의석수를 더 늘리려는 꼼수였음이 백일하에 드러난 셈이다.

이 시점에서 지난 패스트트랙 파동을 되돌아보고 그 경과와 현황을 점검해보는 것은 더 이상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못하도록 엄중히 경고하기 위함이다. 격렬한 몸싸움까지 벌이며 날치기로 통과시키고서 그것들을 개혁이라 강변했지만 그 결과는 이미 드러난 것처럼 참담하다. 너무 실망스러워 화가 날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 있는 정당은 사과 한마디 없다. 이는 국민을 졸로 보는 증좌다.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은 표로 문책·심판하는 것이다. 그 문책이 엉성하고 그 심판이 허술하면 앞으로도 계속 업신여김을 당할 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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