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오는 6월1일 치러지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계기로 기록문화의 도시인 대구의 정체성이 재정립되기를 기대한다. 대구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기록문화에 큰 획을 긋고 있는 거점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대구시민들조차 이같은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지방선거는 선출직 공직자들의 공약을 통해 잊혀지다시피 한 대구의 정체성을 각인함으로써 시민들의 자긍심을 북돋우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하다.

기록문화의 가치는 누구나 알고 있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여는 필수적인 장치이기 때문이다. 기억은 기록이 되고, 기록은 역사가 되고, 역사는 미래가 된다는 표현도 있다. 유네스코가 지난 1995년 세계기록유산사업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우리나라 기록물은 모두 16건이다. 이는 국가 단위로 아시아 1위, 세계 4위다. 그 가운데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 기록물도 2017년 포함됐다.

기록이란 인류가 이룩한 문명을 축적하는 행위다. 인류 역사의 진화는 기록이란 기초자료를 토대로 진행되는 것이다. 기록의 방식은 그림, 문자, 사진, 동영상 등 아날로그 영역에서 디지털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디지털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기록의 영역도 우리의 삶 전체로 넓어지는 추세다. 근대문화유산은 물론, 농악과 노동요 등 무형민속자료를 기록화하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도시재생 과정을 사진과 영상으로 촬영하거나, 근대 및 현대 기록사진을 공모하거나 전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요즘 부각되고 있는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도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기록물이다. 디지털 기록물을 블록체인에 업로드한 셈이다. 복제와 편집이 가능한 디지털기술을 기반으로 기록문화에서 확대 재생산될 미래 자산의 가치는 무궁무한하다. 산업화가 가능한 대목이란 것이다.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돌입한 요즘, 사회 전반적으로 디지털 아카이빙이 주목받는 이유다. 이 때문에 대구가 기록문화의 도시란 정체성을 확립하고 홍보해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대구가 기록문화의 도시란 사실을 살펴보자. 고려시대에는 거란족의 침입을 불력으로 막기 위해 제작된 초조대장경 경판이 팔공산 부인사에 봉안됐으며, 출판이 이뤄진 흔적이 발굴됐다. 초조대장경은 몽골군의 침입 때 불에 타 사라졌으며, 이 때문에 해인사 팔만대장경으로 불리는 재조대장경이 만들어졌다. 지난 2011년 초조대장경 판각 1천년을 맞아 국내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초조대장경 완질을 일본에서 구해 동화사 성보박물관에 비치했으나, 아직까지 초조대장경을 출간했던 경판 복원사업은 요원한 실정이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이후인 1601년 대구에 경상감영이 설치되면서 영영장판(嶺營藏板)을 제작해 영남권 전역을 대상으로 영영본(嶺營本)을 펴냈다. 영조 후반에는 왕명에 의해 100여년 금서로 지정됐던 실학자 반계 유형원의 ‘반계수록’이 경상감영에서 출판돼 전국에 배포됐다. 그 당시 흔적이 동구 옻골마을 백불암 고택에 ‘반계수록 최초 교정 장소’란 안내문과 함께 남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영장판은 대구에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영영장판 18종 4천205점이 소장돼 있다는 사실도 2015년에서야 겨우 확인됐다. 대구의 소중한 기록문화유산이 그동안 서울에서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영영장판이 서울로 간 경위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2017년 경북대에서 영영장판을 소개하는 학술대회와 전시회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영영장판을 빌려오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영영장판이 제 자리인 대구에 있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한 대목이다.

현대에 들어와서 북성로와 침산동 등지에서 기계산업이 왕성했던 대구는 인쇄기계 제작의 메카로 부각됐다. 기계식 활판인쇄기를 수집하고, 그 인쇄기로 책과 명함 등을 만드는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책공방에는 대구산(産)임을 증명하는 철제 라벨이 붙은 활판인쇄기가 상당수 소장돼 있다. 책공방은 지난해 전북 완주 삼례문화예술촌에서 부여로 자리를 옮겼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중구 남산동 인쇄골목에는 인쇄소 1천여 곳이 성업했으며, 전국에서 유일한 지역 단위 출판지원기관인 대구출판산업지원센터도 존재한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구가 기록문화의 도시란 정체성이 확립하기 위한 의미있는 공약이 등장하길 기대한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잠자고 있는 영영장판을 대구로 이관하겠다는 공약에 시민들은 박수를 보낼 것이며, 경상감영 복원사업에 영영본을 간행했던 공간을 부활시키겠다는 공약도 내세울 만하다. 디지털 미래사회에서 문화산업의 기반이 되는 기록문화의 도시란 주도권을 선점할 수 있는 기반을 튼실하게 하는 것도 대구의 미래를 준비하는 전략이다.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