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떠나 너의 손을 잡는다/ 사람의 손에게 이렇게/ 따뜻함을 느껴본 것이 그 얼마 만인가/ 거친 폭포를 뛰어넘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통이 없었다면/ 나는 단지 한 마리 물고기에 불과했을 것이다/ 누구나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누구나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그동안 바다는 너의 기다림 때문에 항상 깊었다/ 이제 나는 너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 산란을 하고/ 죽음이 기다리는 강으로 간다/ 울지 마라/ 인생을 눈물로 가득 채우지 마라/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은 아름답다/ 오늘 내가 꾼 꿈은 네가 꾼 꿈의 그림자일 뿐/ 너를 사랑하고 죽으러 가는 한낮/ 숨은 별들이 고개를 내밀고 총총히 우리를 내려다본다/ 이제 곧 마른 강바닥에 나의 은빛 시체가 떠오르리라/ 배고픈 별빛들이 오랜만에 나를 포식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밤을 밝히리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 (열림원, 2014)

연어는 모천 회귀성을 가진 물고기다. 강 상류 얕은 강바닥에서 태어나 넓고 깊은 바다로 모험을 떠나 큰 세상을 경험하다가 때가 되면 어김없이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온다. 예민한 후각을 가진 연어는 모천의 냄새를 기억했다가 그 냄새를 따라 정확하게 그가 태어났던 곳을 찾아간다. 모험심과 도전정신이 충만하고 용기와 사랑 또한 유별난 존재다. 기억도 나지 않을 고향을 향해 줄 지어 이동하는 귀향행렬은 경이롭다 못해 장엄하기까지 하다. 수구초심은 명함도 내지 못할, 가히 명실상부한 귀소본능의 종결자인 셈이다.

연어의 귀향이 죽음에의 여정이라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고향을 찾는 마음은 사랑일 것이다. 새 생명을 위해 기꺼이 몸을 희생하는 원동력은 모성애다. ‘거친 폭포를 뛰어넘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통이 없었다면/ 나는 단지 한 마리 물고기에 불과했을 것이다’ 세찬 물살을 거스르고 때로는 거친 폭포를 뛰어넘으며 곰을 비롯한 상위포식자의 매복 노림을 감수하면서 산란할 곳으로 돌진하는 연어는 자식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엄마 사랑의 전범이다.

먼 곳에 있는 사람에게 무관심하기 쉽고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기 십상이다. 시인은 연어의 사랑과 희생을 목도하면서 인간사회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들에게 연어가 돼 용기와 희망을 불어 넣어주고 싶다. 그 고운 바람이 가슴에 와 닿는다. 해가 들지 않는, 어둡고 추운 곳에서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밝고 따뜻한 햇볕이 돼주고 싶고, 배고프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푸짐한 양식이 돼주고 싶다. 연어의 삶은 사랑을 사회 곳곳으로 확산시키는 힘이다. 연어는 고결한 사랑의 전도사다.

죽음이 기다린다고 슬퍼할 건 아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은 아름답다’는 말을 믿는다. 연어에겐 자신의 주검을 거두어줄 절실한 ‘손’이 기다린다. 그 손은 그로 인해 삶을 이어가는 인간이고 곰이다. 사랑이 살아있는 한, 연어는 죽어도 죽지 않는다. 아름다운 새 생명이 부화하고, ‘배고픈 별빛들이’, ‘은빛 시체’를 포식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연어의 시신은 시신이 아니다. 다른 생명체의 피와 살로 순환돼 역동성을 주는 그것은 사랑의 몸 보시다. 고통과 죽음을 마다않고 그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 들어가는 연어는 용기 있는 지사이자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는 성자다. 연어의 희생적인 삶에 경의를 표한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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