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지 못한 뼈가 있어 다독여 안고 왔네//하루 같이 거머잡은 어렴풋한 호미 끝에//기어이 끊긴 세상을 되먹이듯 들고 왔네//적멸을 털어내듯 양각된 여음들을//돌에 묶어 나직이 내려놓던 그 날에도//간신히 세간에 남은 깊고 깊은 저 고요들//거기, 세상 밖은 동인가요 서인가요//목숨의 얼개처럼 등 푸른 비린내가//내밀한 한때를 건너 선연하게 서 있다

「좋은시조」(2021, 가을호)

이화우 시인은 경북 경주 출생으로 2006년 등단했고, 시조집으로 ‘하닥’, ‘동해남부선’이 있다.

‘갈돌’을 소재로 선택한 점이 인상적이다. 갈돌은 석봉이라고도 하는 갈판 위에서 왕복운동에 의해 곡물이나 야생열매 등을 가는 연장이다. 갈판과 짝을 이룬다. 어느 날 문득 화자의 눈에 들어온 것이리라. 첫줄 삭지 못한 뼈가 있어 다독여 안고 왔네, 라는 진술을 통해 화자가 갈돌을 만나 손에 넣은 것을 알 수 있다. 갈돌을 두고

삭지 못한 뼈라고 인식하고 있는데서 사유의 깊이가 느껴진다. 시공을 한참 거슬러 올라 신석기시대를 떠올렸을 법하다. 발견된 곳은 그 다음에 드러난다. 하루 같이 거머잡은 어렴풋한 호미 끝에 얻은 것이다. 그래서 기어이 끊긴 세상을 되먹이듯 들고 온 것이다. 화자는 적멸을 털어내듯 양각된 여음들을 돌에 묶어 나직이 내려놓던 그 날에도 간신히 세간에 남은 깊고 깊은 저 고요들을 살펴보기도 한다. 거기, 세상 밖은 동인가요 서인가요, 라고 물으면서 목숨의 얼개처럼 등 푸른 비린내가 내밀한 한때를 건너 선연하게 서 있는 것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갈돌’이라는 오래된 유물을 통해 자유로운 상상을 펼친 점이 이채롭다.

그는 ‘패(覇)를 걸다’에서 의미심장한 노래를 부르고 있다. 패는 바둑에서 서로 한 수씩 걸러 가면서 두어 잡으려고 하는 한 집을 뜻한다. 그렇기에 반상의 승부사는 여전히 패를 거는 것이다. 행마가 길을 놓고 주춤주춤 느려지고, 라고 말하다가 별안간 비약해 고단한 싸락눈까지 두드리는 선술집에, 라고 배경을 설정한다. 너도 한 잔, 나도 한 잔, 팻감으로 써먹었던 달콤하고 씁쓸하던 일상의 순간들이 뒤보면 미생인 채로 손 내밀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초읽기도 허술히 다 넘기고 어느덧 내보이는 자정의 허리춤에 궁도를 넓히며 가는 별이 돋고 있었다, 라는 셋째 수는 또 한 번 공간 이동을 이루며 ‘패를 걸다’를 끝맺고 있다. 이러한 기법은 의도적이면서 참신하다.

또 한 편 ‘단체사진’은 이색적이다. 어느 행사에서 찍힌 사진을 바라보면 새벽녘 가끔 보던 달 같다고나 할까, 라는 능청스러움이 눈길을 끈다. 흐릿한 자리를 틀듯 고여 있는 그 시간 쉬 사라질 영혼을 가까이서 은유하듯, 이라는 절실한 비유도 그렇다. 이어서 불쑥불쑥 예감도 생략한 빛이 들어 그믐도 잡지 못하는 어둠들이 흐르네, 라는 이미지 직조도 예사롭지가 않다. 무언가 물어볼 인사는 서둘러 비켜나자 우리는 윤곽으로 걸어가는 달그림자, 라고 읊조리고 있는 대목도 공감을 안긴다. 마지막 수 종장 되비친 미래는 와서 건너 빛이 접히네, 도 의미심장하다. ‘단체사진’이라는 제목을 글감으로 삼는 일은 쉽지 않다. 접근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새로운 무대를 꾸며 무언가 또 다른 정경과 더불어 내밀한 인생살이의 여러 단면을 제시하고 있어 그 점이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의 신비스러운 옷자락에 손길이 슬쩍 가닿은 기분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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