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아의 세계/ 김가경

발행일 2021-11-24 16:40:3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 보이지 않는 세계를 찾아서 ~

… 산 중턱에 집이 있다. 방 한 칸에 이불 몇 개가 전부였다. 잠적한 그를 복귀시키라는 대표의 특명을 받고 은아와 함께 그를 찾아왔다. 닉네임이 ‘보고밀’인 그는 인기 있는 서평가다. 그는 거기서 눌러앉은 듯했다. 이틀에 한 번 잠자리박물관에 나가는 게 고작이다. 어쨌든 설득해야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셋이 한 방에서 잠이 들었다./ 아궁이 앞에 앉으니 지난 일이 떠올랐다. 그는 술에 취해 오바이트까지 했다. 어깨를 걸고 걷다가 또 술을 마셨다. 그는 부역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 은아의 전화가 와 셋이 합류했다. 은아가 본명을 묻자 그는 눈물을 흘렸다. 은아도 울었다. 왜 우는지 알 수 없었다. 보고밀, 아버지와 도망 다니며 사먹었던 베지밀이 생각났다. 아버지는 사기꾼으로 늘 피해자에게 쫓겨 다녔다. 그는 서평을 안 할 생각이었다. 난감했다. 대표가 스트레스로 입원했다는 말에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때 은아가 뱀딸기를 들고 나타났다. 뱀이 먹는다는 뱀딸기. 벌써 입 주위가 빨갛다. 그걸 먹으면 뱀이 된다고 놀려줬다. 거리에서 은아와 인연을 맺었다. 폭행당하던 은아를 도와주려다 함께 맞고 경찰서로 갔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은아는 의지할 데 없는 신세였다. 그 이후 나는 은아의 오빠가 됐다./ 은아는 뱀이 될까봐 걱정했다. 그가 잠자리박물관으로 간 후, 대표에게 보고하려 했지만 폰이 터지지 않았다. 은아가 잠자리박물관에 가보고 싶다며 무작정 길을 나섰다. 가는 길에 은아는 풀섶에서 지렁이를 들고 나와 아이처럼 좋아했다. 걷다보니 잠자리박물관이 나왔다. 거기에서 족욕을 하던 은아는 내가 평발인 걸 보고 신기해했다. 조금만 걸어도 발이 아픈 원인이다. 박물관에서 체험활동도 했다. 토악질을 하다가 용기를 떨어트리는 바람에 욕지기를 하며 구더기를 주워 담고 있던 보고밀을 우연히 봤다./ 은아는 외할머니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해줬다. 도둑으로 몰려 몰매 맞아 죽은 방물장수 이야기였다. 문득 박물관에서 봤던 일이 생각나 그의 기척을 살펴봤다. 훌쩍이는 은아 소리만 들렸다./ 오일장이 선다는 말에 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갔다. 장터를 돌아보는 동안 보고밀이 사라졌다. 묘한 배신감이 들었다. 차비가 없어 집까지 걸어서 갔다. 그가 먼저 와 자고 있었다. 은아는 뱀이 될 것처럼 굴었다./ 은아가 밤새 토했다. 죽을 끓이려고 불을 지폈다. 아궁이 앞에서 그가 말했다. 스스로를 속이며 사는 세상과 자신이 싫어 잠적했다고. 나는 은아가 울면 고민스럽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그는 은아가 뱀이 될지 모른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장날 PC방에서 대표에게 돌아가겠다고 메일을 보냈단다. 어쨌든 목적은 달성한 셈. 아버지한테서 출소했다는 연락이 왔다. 은아가 백짓장 같은 얼굴로 나왔다. 그녀가 뱀이 될지 모른다.…

은아는 걸핏하면 운다. 뱀딸기를 먹고 뱀이 된다고 생각한다. 뱀은 징그럽고 무서워 다들 피한다. 은아는 뱀이 돼 다른 세계로 갈지 모른다. 그는 속세를 떠나 자기만의 세계로 떠나고 싶다. 나쁜 놈이 아닌 척 다른 나쁜 놈을 경멸하는 세상이 싫다. 허나 구더기의 겉만 보고 토악질을 하는 그는 순수한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다. 속세로 복귀해야 한다. 은아는 이방인이란 이유로 누명쓰고 죽은 방물장수다. 지렁이와 구더기에 초연한 은아는 다른 세계의 존재인지 모른다. 살면서 한번쯤 생각해보는 화두다. 난해하다.

오철환(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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