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별세했다. 고인은 집권 기간 동안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닦아놓은 중화학 공업의 기반 위에 인재를 중용,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을 주도했다. 하지만 공(功)보다는 과(過)가 더 부각되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하고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이 됐다. ‘5·18’에 대한 사죄 없이 회한만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육사 동기이자 12·12쿠데타를 함께 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별세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다.

전 전 대통령은 23일 오전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고인은 최근 건강 상태가 악화돼 세브란스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1931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대구공고와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졸업하고 군에 들어갔다.

5·16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자 육사 생도들을 동원, 군부 지지 시가행진을 벌였다. 이 일로 박정희의 신임을 얻어 승승장구했다. 1979년 10·26 사건이 터지자 보안사령관으로서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은 후 12·12 사태 때 군을 손에 넣었다. 80년 5·18 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하고 국정을 장악했다. 그리고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치러진 11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81년 7년 단임 대통령제를 골자로 하는 새 헌법을 통과시킨 후,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제12대 대통령 선거(간접 선거)에 출마해 다시 대통령에 당선됐다. 임기 말인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단이 돼 6월 항쟁이 발생했다. 당시 여당 대선 후보였던 노태우의 6·29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다.

고인은 퇴임 후 1995년 김영삼 정부 때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구속기소돼 반란수괴죄 및 살인, 뇌물수수 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고인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5·18 민주화운동 유혈진압과 삼청교육대,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언론통·폐합 등 고문과 인권 유린으로 오점을 남겼다. 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재를 중용해 집권 기간 내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도 유치했다.

고인은 퇴임 후 끝없이 추락했다. 말년까지 사자명예훼손으로 법정에 서야 했다. 광주에서 진행 중이던 5·18 형사재판은 공소기각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미납 추징금 956억 원도 자연스레 정리되게 됐다.

전 전 대통령의 별세로 어둡고 암울했던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하지만 끝내 반성과 사죄를 않은 5·18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책임은 회한으로 남게 됐다. 고인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나쁜 평가를 받기도 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홍석봉 기자 dghong@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