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조선 후기의 학자 다산 정약용(1762~1836)이 강진에서 16년째 유배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큰 아들 정학연은 아버지의 유배생활을 끝내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는 다산의 육촌 처남인 당시 예조판서 홍의호에게 유배를 풀어 달라는 부탁 편지를 보내는 게 어떻겠냐고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러자 다산은 큰 아들에게 답장을 보내 이렇게 말했다.

“천하에는 두 가지 큰 저울이 있다. 하나는 옳고 그른 것을 재는 ‘시비(是非)의 저울’이요, 다른 하나는 이익과 손해라는 ‘이해(利害)의 저울’이다. 이 두 가지 큰 저울에서 네 가지 등급이 생겨나온다.”

다산이 이야기하는 네 가지 등급은 다음과 같다. 가장 좋은 것은 옳은 것을 지키면서 이익을 얻는 ‘시이리(是而利)’이고, 그 다음은 옳은 것을 지키려다가 손해를 입는 ‘시이해(是而害)’이다. 또 그른 것을 추구하면서 이익을 얻는 ‘비이리(非而利)’가 다음이고, 그른 것을 따르다가 손해를 입는 ‘비이해(非而害)’가 최하이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백상경제연구원)’이라는 책을 보면 다산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비굴함을 택하지 않겠다며 강경한 태도로 거절했다. “내가 집으로 못 돌아가는 것은 분명 큰일이다. 하지만 죽고 사는 일에 비하면 사소한 일이다. 사람이란 경우에 따라 목숨을 버리고 의리를 택해야 할 때도 있다.”

옳은 것을 지키면서 이익을 얻는 것과 그릇된 것을 좇다가 손해를 입는 것은 당연한 세상 이치다. 문제가 되는 것은 옳은 일을 하면서 손해를 보는 경우와 나쁜 짓을 하면서도 이득을 얻는 경우다. 어쩌다가 요즘 세태는 옳은 일을 하고도 손해만 보는 경우를 바보로 취급한다. 남들은 다 법을 어기는데 나 혼자 법을 지키면 손해라고 인식한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손해라는 판단이 들면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하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나에게 작은 이득이라도 된다면 옳지 않은 일에도 쉽게 뛰어든다. 많은 사람들은 옳고 그름의 가치의 문제보다 이익과 손해라는 현실의 문제를 더 중요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정약용의 가르침은 그렇지 않았다. 내게 이득이 되느냐 손해냐를 따지는 이해(利害)의 저울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다. 대신 옳고 그름을 먼저 판단하는 시비(是非)의 저울을 더 앞세웠다. 그런 점에서 정약용은 현대의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점을 일깨워 준다. 비이리(非而利)가 당장은 자기에게 이득을 주는 것 같지만 결국 머지않아 비이해(非而害)라는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사람들은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요즘도 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기도 하다. 사립학교와 공공기관 채용 비리는 여전하고, 납품비리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특히나 부동산과 관련된 큼지막한 뉴스를 보고 듣고 있노라면 정약용의 가르침이 더욱 돋보인다. 욕심에서 출발한 옳지 않은 일인 줄 알면서 눈앞의 이득을 위해 설치다가 결국은 명예도, 돈도, 권력도 잃고 마는 경우를 너무 자주 봐서다. 지금 현재의 이익을 얻기 위해 그릇된 일에 가담했다가 오히려 큰 화를 입는 경우다.

정약용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 할지라도 자기 자신에게 손해나는 일은 더욱 쉽지 않다. 그렇더라도 조금은 이성적으로 그의 지혜를 돌아볼 필요는 있다. 적어도 현재의 사회 현실이나 국가의 앞날을 생각하고 있는 국민들이라면 말이다. 그가 유배생활 중 집필한 ‘경세유표’ 서문에 있는 경고를 받아들일 필요는 있다. ‘터럭 한 끝에 이르기까지 병들지 않은 곳이 없으니,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망하고야 말 것이다.’

당장 개혁이 필요한 곳은 어딘가. 다산이 이야기하는 네 가지 등급 중에서 세 번째인 ‘비이리(非而利)’에 속하는 일부 정치인들이나 사회지도층 인사들 아닐까.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그네들 눈에는 국민들이 무지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국민들은 두 가지 큰 저울로 그들을 달아서 네 가지 등급으로 나누고 철저하게 가려내고 있다. 그들이 이마저도 깨닫지 못한다면 ‘옳지 않은 것을 추구하다가 끝내 해를 입고 마는’ 최하의 등급으로 추락할 수도 있음을 말이다.

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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