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빠른 움직임을 따라 가지 못해서//소통이 어렵다며 입은 말을 삼켰다//바람의 바삭한 질문 그쯤에서 멈췄다//갈라진 입의 틈새 깊어진 말의 안쪽에//선명하게 그려 넣은 가지런한 소리의 지문//모른 척 꼭 다문 입술 말은 입의 혼이었다

「사막을 건너온 달처럼」(2021, 고요아침)

김계정 시인은 시조집으로 ‘눈물’, 현대시조 100인선 ‘한번 더 스쳐갔다’와 ‘사막을 건너온 달처럼’이 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가장 빠른 연결 고리는 말이다. 말의 다리에서 만난 사람은 함께 해도 좋은 사람인지 마음으로 느낀다. 그래서 말은 꼭 필요하며 말할 수 있는 입은 절대적이다. 작품마다 배치된 산문의 한 대목이다. ‘사막을 건너온 달처럼’은 시조 한 편에 산문 한 편으로 구성돼 있어서 시 읽기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 시조집은 자작시조 해설집은 아니다.

‘말은 입의 혼이었다’는 말에 대한 각성이다. 혀 아래 도끼 들었단 말 들어 본 일 있나요? 남을 자꾸 헐뜯는 사람들의 혓바닥 아랜 도끼가 숨겨져 있대요, 서슬 푸른 쇠도끼, 라는 동시조가 있다. ‘말은 입의 혼이었다’를 살피다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말의 빠른 움직임을 따라 가지 못해서 소통이 어렵다며 입은 말을 삼켰다, 라는 대목에서 삶이 간단치 않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 순간 바람의 바삭한 질문이 그쯤에서 멈춰버렸다. 그리고 갈라진 입의 틈새 깊어진 말의 안쪽에 선명하게 그려 넣은 가지런한 소리의 지문을 화자는 본다. 그런 후 모른 척 꼭 다문 입술을 통해 말은 입의 혼이었음을 또 다시 깨닫는다.

그는 ‘노을의 안부’에서 하루의 삶을 돌아본다. 햇살을 등에 지고 가장 먼저 부린 빛이 가장높이 오른 후에 다시 돌아가기까지 하늘의 정수리부터 돋아난 노을의 시간을 엿본다. 바람에 불려가듯 숨 가빠진 하루가 햇살을 튕겨내며 어둠 속에 스며들면 또 하루 잘 살았다며 전하는 안부 인사가 노을임을 깨닫는다. ‘밥 한번 먹자’는 의례적이지 않는 인사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곡진하게 담겨 있다. 즉 언제 우리 밥 한번 먹자 지나가는 그 말을, 이라고 화자는 지나가는 말로 수식한다. 보통 그 말 한 뒤 밥 한번 먹는 일이 잘 성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의례적인 인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미리 날짜와 장소를 못 박아 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한번 하는 말에 불과하게 된다. 그 말을 바람의 인사처럼 흘려듣는 사람이 있고, 앞서 말한 것처럼 공손한 거절 대신에 날짜를 먼저 잡는 사람도 있다. 실천력이 있는 인물이다. 가보지 못한 길을 함께 가는 일이라며 식구가 될 좋은 인연 고운 날을 만들자며 마음을 대신하는 말 우리 오늘 밥 한번 먹자, 라는 인사를 이웃과 자주 나누며 살았으면 좋겠다. 얼마나 팍팍한 삶의 연속인가? 마주앉아 따뜻한 저녁 밥 한 그릇 나누기가 어려운 시절이다. 이런 때일수록 더욱 정을 내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김계정 시인은 말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진정성이 있는 덕담이 오가게 되면 생명의 활착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말은 입의 혼이었다’와 ‘밥 한번 먹자’와 같은 시조를 쓰게 됐을 것이다. 밝은 웃음과 더불어 정이 듬뿍 담긴 말을 건네면서 오늘 하루도 기쁘게 살 일이다. 진실로 험담이나 뒷담화는 삼갈 일이다. 그러려면 마음을 곱게 먹어야 한다. 혀는 불이라 불의의 세계라는 말이 있다. 속에 불의를 품어서 거센 불길을 일으키는 몹쓸 말버릇은 말끔히 털어내어야 한다. 그것이 곧 바르게 사는 길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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