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킹을 보다」(2021, 책만드는집)
장남숙 시인은 경북 경주 출생으로 2020년 등단했고, 시조집으로 ‘마네킹을 보다’가 있다. 문학평론가 손진은은 현실과 삶의 본질을 무시하는 눈, 그것을 절제된 언어로 응집시키고 풀어내는 서정의 방식, 이 중심축을 기반으로 장남숙의 시조는 창작된다고 평가하고 있다. 눈여겨볼 대목이다. 시조집의 서문에서 시인은 커튼을 친다고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바깥세상은 역동적이고 그 이면은 늘 꿈틀거린다. 그 꿈틀거림이 내 시조 한 켠에도 자리하기를 바란다, 라고 적고 있다. 속 깊은 꿈틀거림으로 창작의 길을 걷고 있는 시인의 소망이 소박하다.
‘마네킹을 보다’는 비근한 소재다. 그러나 화자는 새로운 눈으로 마네킹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한 번도 제 옷을 입어본 적 없었고, 얼기설기 시침핀 허리춤을 찌르고 온종일 부동자세로 눈을 뜬 채 다만 꿈을 꾸고 있을 뿐이다. 꿈이 꿈으로 끝난다면 그 꿈은 허망한 것이 된다. 어렵지만 꿈은 현실화돼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또한 눈을 뜬 채 꿈을 꾸고 있기에 더욱 힘겨운 일이다. 제 옷을 입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은 주체적인 삶을 구현해 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체온 없는 모델로 서 있는 것이 그녀의 일이다. 온종일 부동자세이니 무척 고통스럽다. 당겨 온 계절 따라 거짓 웃음 흘리고 핏기 없는 그녀가 유리벽에 마주 서는 일은 일상이다. 그리고 후다닥 갈아입은 옷에 드러나는 정가표가 도도한데 정작 자신과는 무관하다. 그러면서 레이스 자락 속에 시린 속내를 매달고 관절이 삐걱댈 때 쉼표 하나 생길까 생각해 본다. 무표정 데칼코마니가 아니라 혼자 힘으로 한 번쯤은 똑똑똑 걷고 싶어 한다. 이렇듯 ‘마네킹을 보다’는 주체적인 삶을 구가하지 못하는 한 사람의 초상을 은연중에 표상한다.
그는 단시조 ‘골무’에서 콕콕 찌른 거친 문장 검지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퇴고한 자국마다 얼룩꽃이 후드득, 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한 폭의 책으로 필거나 하면서 시를 깁는 아침의 일이다. 또한 ‘가을 목소리’에서 촘촘한 누런 볏단 들녘이 졸고 있는 것을 살피면서 태풍에 까만 속내가 쭉정이로 흐르는 것을 본다. 그리고 가을볕 뒤돌아본다, 라고 말하면서 멈칫멈칫 못다 한 말을 떠올리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머뭇거리다가 혹은 망설이다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을 놓칠 때가 있다. ‘가을 목소리’는 그러한 미묘한 분위기를 상기시킨다.
장남숙 시인의 첫 시조집 ‘마네킹을 보다’ 상재를 크게 축하하는 바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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