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빈 들녘 때쯤 시골 마을엔/ 밀주 단속이 한창이었지// 숨겨야 하는 자, 찾아야 하는 자/ 시작되는 숨바꼭질// 동구 밖 볏 짚단에서/ 매의 눈으로 잘도 찾아내던 술항아리// 파랗게 질린 촌로/ 백년손님 맞이할 술이라며/ 싹싹 빌며 애걸복걸했지// 어릴 적 우리 집도 밀주 단속에 걸렸지/ 안절부절못하며 어디론가/ 종종걸음 치던 어머니// 달빛 흐르고, 동네 개는 짖고/ 야단법석 속에서/ 어린 내 마음은 요동쳤지// 꽉 잡고 있던 술항아리/ 마당에 슬그머니 내려놓던 어머니/ 무언가에 홀린 듯한 포기한/ 그 어머니 모습 생생하지

「세금 단풍」 (그루, 2020)

집집마다 밀주를 담가 먹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오래 전도 아니다. 70년대 이전엔 대강 그랬던 것 같다. 도시엔 밀주를 안 하는 집이 많았지만 시골은 거의 대부분 밀주를 담가 먹었다. 도시엔 대폿집이 열댓 집 건너 꼴로 있었고 자그마한 동네식당에도 술을 팔았으니 굳이 집에서 술을 담글 필요가 없었다. 그렇지만 시골은 사정이 많이 달랐다. 시골의 경우, 가을걷이가 끝나면 한 때이긴 하지만 제법 곡식이 풍족했고 가마니 만들거나 새끼 꼬는 일 외엔 큰 일이 없는 농한기가 봄까지 지속됐다.

마을사람들은 날이면 날마다 술 마실 일을 만들어냈다. 오늘은 이 집에서 놀고 내일은 저 집에서 모였다. 모이는 곳은 남녀나 나이별로 달랐다. 사람들이 모이면 막걸리를 마시는 건 기본이었다. 열댓 살만 돼도 술을 마셨다. 그런 상황에서 집집마다 술을 담가두지 않을 수 없었다. 술이 흔했고 술 인심도 좋았다. 춘궁기의 기억은 잊었다. 굶을 땐 굶더라도 햅쌀로 술을 담갔다. 거기서 더 나가면 노름판이다. 술과 노름은 사촌쯤 된다고 보면 맞는다.

모든 집에서 밀주를 담근다는 사실은 비밀이 아니었다. 밀주 단속하는 공무원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 자신도 친구들과 만나면 집에서 함께 밀주를 마셨고 그 술로 조상께 제사를 지냈다. 마을에 그의 친척이나 친구가 없을 리 없었다. 그런 처지에 인정사정없이 적발하기 곤란했을 터다. 그런 연유로 단속반이 마을에 뜨는 순간 온 마을에 정보가 짝 퍼졌던 것이다. 집집마다 술독을 숨긴다고 야단법석을 떨곤 했다. 단속하는 시늉만 하고 가끔 기본 실적을 채우기 위해 희생타로 작은 건을 적발하기도 했다.

보통 시골 사람들은 나라에서 밀주를 왜 단속하는지 몰랐다. 제집에서 자기 독에 자기 쌀로 자기 손으로 술을 담그는데 왜 단속하고 난리를 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시골 할매는 술도가에서 뭔가 농간을 부린 것으로 짐작하기도 했다. 술을 마시지 말라는 거면 술도가부터 없애야 맞았다. 탈세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기엔 사고가 너무나 천진난만했다. 일제가 남긴 악습으로 알고 투덜거리기도 했으니.

단속에 걸려 당황하던 시골 아낙의 모습은 순박하기 그지없다. 비록 밀주가 나쁘다는 죄의식은 크게 없었겠지만 밀주 단속에 걸렸다는 사실에 정신 줄을 놓았다. 일제 순사의 살벌했던 단속 행태에서 배운 학습효과로 더 겁먹었을 법하다. 벌과금이 많지 않았겠지만 법을 위반한 사실에 낙담하고 주눅 들었을 듯하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 공권력에 의한 단속에서 적발됐다는 것은 전과나 다름없는 불명예다. 무엇보다 밀주 단속에 걸린 안 좋은 모습을 자식에게 보여주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안절부절못했을 터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