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억강부약(抑强扶弱)으로 대동세상(大同世上)을 만든다는 사람이 여당 대선 후보다. 그는 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돕는 체제로 이상사회를 건설한다는 포부를 가진 거친 야심가인 듯하다. 그가 구상하는 체제가 그 의도대로 모두 함께 잘 사는 세상에 데려다줄지 의심스럽다. 대선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려면 그 인과관계를 꼼꼼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그 뜻만 선하고 착하다고 그 결과도 그런 건 아니다.

그 강약의 의미가 무엇일까. 그 원인과 표징으로 나눠 보면, 힘의 원인이 되는 요인으로 완력, 지혜, 지식, 정보, 창의력, 리더십 등을 들 수 있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힘의 표징으로 권력, 명예, 부 등을 생각할 수 있다. 싸움을 잘하거나 머리가 좋거나 재주가 뛰어난 자가 강자이고, 권력이나 명예 또는 부를 가진 자가 강자란 뜻이다. 그렇다고 품성이나 자질을 누르거나 보태주자는 뜻은 아닐 터다. 결국 권력이나 명예 또는 부 등을 말하는 셈이다. 그 중 자본주의의 총아인 부를 강약의 기준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추론이 자연스럽다.

이렇게 따져보면 억강부약이란 부자의 부를 빼앗아 함께 나눠먹는다는 의미다. 부를 나누면 바람직한 이상사회가 된다는 사고다. 일회에 한한다면 그리 될 수도 있을 법하다. 그렇지만 그런 억강부약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부를 쌓는 원인행위를 할 유인이 떨어져 점차 부의 총화가 쪼그라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이미 실패로 결론 난 실험이다. 모든 산출물을 국유로 한 다음 이를 공평하게 나눠주는 사회주의나 ‘억강부약 대동사회’ 가설은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기본소득을 억강부약의 수단으로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국토보유세 등으로 부자에게 누진적으로 거둔 세금을 부자를 포함한 모두에게 매달 일정액씩 나눠준다는 것이다. 우선 기초생활을 할 수 있는 수준에서 도입하고 점차 그 금액을 높여간다는 구상인 것 같다. 그 목표는 물론 대동세상이다. 부자에게 거둔 돈을 ‘다시’ 부자에게 나눠준다는 것은 모순이다. 이는 최종단계인 이상향에 도달하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자가당착이다. 목적지에 도달하지도 못할 것이지만.

백보를 양보해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고 해도 ‘일률적으로’ 나눠주는 것은 맞지 않다. 취약계층을 제대로 가려내어 그에 상응한 맞춤식 지원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다. 기존 누진세제도 약한 형태의 ‘억강’이고 생활보호대상자 등에게 세금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안전망도 약한 형태의 ‘부약’이다. 그렇게 조금씩 가다보면 모두 평등하게 잘 사는 이상향에 도달할지 모른다. 그 최종단계까지 이르지 못해도 그 과정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다. 최종 도달점이 같은데 굳이 모순적이고 후퇴할 위험이 뻔한 길을 갈 필요가 없다.

경제학의 한계효용을 차용해 따져 봐도 그 결론은 같다. 기존의 부에 부가되는 1원의 한계효용은 빈자가 부자보다 더 크다. 한정된 예산을 감안하면 빈자에게 우선 지원하는 것이 총효용을 더 크게 만든다. 부가되는 1원이 빈자에게 더 절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돈 1원에 대한 부자와 빈자의 한계효용이 같아질 때까지 지속된다. 제약된 예산 조건에서 화급한 곳에 선택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현명하다. 선별적 복지가 보편적 복지보다 우수한 접근 방법이다.

선별적 복지 시 행정 비용이 많이 들 뿐더러 족집게 선별이 어렵다는 난점이 있긴 하다. 그렇다고 무조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금액을 지급하는 것은 안이할 뿐만 아니라 지속성도 없다. 해를 거듭할수록 그 재원이 줄어들 것이 명확하다. 검증되지 않는 정책을 내놓고 억지를 부린다고 될 일이 아니다. 감언이설로 잠시 속일 수 있지만 오래지 않아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억강부약과 기본소득은 천동설 만큼이나 유치하다. 앞서가는 자의 혁신 의욕을 꺾어 주저 앉히는 심술이고, 빼앗은 금품을 나눠주며 생색내는 의적의 호기다. 공짜 돈을 받은 사람이 이를 마중물로 해 일어나 달린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버릇만 나빠지고 더 뒤처질 뿐이다. 남의 재물을 털어먹는 단맛에 취하게 함으로써 모두를 더 무기력하게 만든다. 억강부약과 기본소득은 아편이다. 강자에게 더 잘 하게 격려하고 약자에게 더 잘 뛰게 체력을 키워주는 것이 진정 정부가 할 일이다.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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