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그레이프 바인(grapevine)이라는 단어가 있다. 사전적인 의미는 포도 넝쿨이지만 비공식 경로를 통해 이뤄지는 의사소통을 말한다. 그 경로가 포도 넝쿨처럼 여러 방향으로 뻗어 나간다는 의미다. 소문이나 풍문, 유언비어, 낭설 등이 대표적이다.

그레이프 바인은 몇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다. 여러 가닥으로 가지가 뻗어있다는 것과 가지(정보)가 놀라울 만큼 빨리 뻗는다(전파된다)는 것, 그리고 가지(정보)가 얽히고설킨다는 것이다. 또 정보전달이 선택적이고 임의적(소문을 아무에게나 전달하는 사람은 없다)이라는 속성도 가지고 있다.

이런 속성을 가지고 전파되는 정보의 정확성은 어느 정도일까? 한 연구에 의하면 특정한 조직 내에서 전달되는 그레이프 바인 중에서 약 75%가 정확한 것이었다. 의외로 높다. 그러나 문제는 정확하지 않은 25%다. 이 25%가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도 해서다.

그레이프 바인은 논어 안연편에서 극자성과 공자의 제자 자공의 대화에 나오는 ‘사불급설(駟不及舌)’과도 비슷한 의미다. 사(駟)는 말 네 필이 끄는 수레다. 아무리 빠른 수레이더라도 사람의 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만큼 소문은 빠르게 퍼져 나가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말조심을 해야 한다는 경구다.

몇 년 전, 한 일간지에서 소문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조선 전기 세종의 가장 신임을 받는 재상이었던 황희 정승과 관련된 일화다. 당시 북방에선 여진족이 침입해 골치가 아팠다. 김종서 장군이 여진족을 몰아내고 육진(六鎭)을 개척해 두만강을 경계로 국경을 확정하는 등 공을 세우자 조정에서는 그를 헛소문으로 모함하기 시작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황희는 어느 날 부인에게 말했다.

“오늘 아침 내 귀에서 파랑새가 나와 날아가는구려. 이런 괴이한 일은 당신만 알고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마시오.” 그러나 부인은 딸에게, 딸은 남편에게 이야기하며 삽시간에 번져나갔다. 곧 조정에서도 이슈가 되고 세종대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됐다. 세종은 황희를 불러 진위를 물었다. 세상의 소문이 얼마나 빠른지 알아보려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는 황희의 말에 세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김종서에 대한 음해도 귀담아듣지 않게 됐다.

말은 글과 달리 그만큼 무섭다. 파급력이 엄청나다는 말이다. 선거라는 상황 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더군다나 한 나라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이니 오죽하겠나. 특히 이 시기, 여야의 대통령 후보가 정해지고 본격 선거운동이 시작된 국면에서는 더욱 그레이프 바인이 기승을 부린다. 이전에 나온 그레이프 바인에서 확대재생산 되기도 한다. 이전투구가 따로 없다. 제보라는 형식을 통해 언론사에도, 여야 선거캠프에도 쏟아져 들어오기도 한다. 물론 그 중에는 사실도 있을 것이고 사실과 거리가 멀거나 아니면 본질과 관련 없는 것들도 꽤 많을 것이다.

얼마 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기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백브리핑(백그라운드 브리핑)’을 1주일 이상 중단했다가 재개했다. 역대 대선에서 보듯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치는 말실수를 줄이기 위함이었다. 실제 앞으로 4개월 여 남은 선거운동 기간에서 말실수는 판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말 한마디에서 여러 갈래의 그레이프 바인이 재생산돼 퍼져나가는 것이 당혹스럽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식적인 소통의 장마저 막아버릴 수는 없다. 그레이프 바인, 즉 헛소문으로 인한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대선 후보와 국민들 간의 소통의 길을 열어두는 것 뿐이다. 정확한 정보가 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국민들에게 전해져야 그레이프 바인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정확하지 않은 그레이프 바인, 즉 가짜뉴스와 여론조작이다. 정보가 부족한 국민들은 가짜뉴스를 믿고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보다 빠르게 이를 퍼나르게 된다. 이쪽저쪽에서 쏟아내다 보니 때론 정보가 얽히고설킨다. 낭설, 가짜뉴스, 오보가 판칠수록 걸러서 듣고 말하는 이성적 사고가 필요하다. 국민들만이라도 정신을 바짝 차릴 때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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