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완 경주소방서장

‘눈 뜨고 당한다’는 말이 있다. 인식을 하면서도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당하고 멍하게 있는다는 말이다.

재난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해야 할 소방관들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눈앞의 인명피해를 보고 있어야만 한다면 그 정신적 충격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최근 신축 아파트의 경우 주차장이 대부분 지하에 있고, 화재 발생 시 지상에서 화재진압 작전을 전개하는데 크게 장애요인이 없지만 구축 아파트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건축한 지 20년이 넘는 구축 아파트는 당시 가구당 주차 대수가 대부분 1대 정도로 설계됐으나, 최근 가구당 차량이 두세 대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구축 아파트의 주차공간은 상당히 부족한 실정이다.

또 오래된 아파트는 이중주차로 차를 빼곡하게 주차한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만약 화재가 발생한다면 소방차가 진입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신속한 진압 작전을 수행하기 힘든 상황이다.

소방자동차 전용 주차구역은 만약에 발생할지 모르는 화재나 각종 사고에 대비해 소방차량이나 인명구조용 특수 차량을 주차해 신속하게 화재진압과 인명구조를 위한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설정해 놓은 구역으로 우리 공동체의 생명을 지키는 귀중한 생명선이다.

과거에는 소방차 전용구역 설치를 의무화하거나 주차를 금지하는 조항이 없었다. 하지만 2018년 8월10일 소방기본법이 개정되면서 공동주택이나 다중밀집시설 주변에 소방차 전용구역 설치가 의무화됐으며, 소방차 전용구역 방해행위를 할 경우 1차 적발 시 50만 원, 2차 적발 시 1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공동주택 소방자동차 전용구역 확보는 행정처분이나 벌칙이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전용구역 확보가 안 된 상태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구조 실패로 사망자가 많이 발생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화재 발생 시 소방자동차 전용구역이 확보되지 않으면 초기 진화가 늦어질 수 있으며 화재진압, 인명구조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해서는 소방자동차 전용구역 확보가 필수임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해 주길 바란다.

공동주택 소방자동차 전용구역 확보는 우리 가족과 이웃을 살리는 길임과 동시에 출동하는 소방관의 안전을 확보하는 길이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내 가족, 우리 이웃의 안전을 위해 소방차 전용 주차구역에 주차금지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다.

안전은 아무 노력없이 저절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안전에 대한 관심과 학습을 통해 내 안전, 더 나아가 이웃의 안전을 함께 지키기 위해서는 안전 준수사항을 알아야 하고, 철저한 실천만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나간다는 것을 명심하자.

한창완 경주소방서장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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