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바라봐도 꾸부정한 저 어깨는/곡괭이 닮아버린 동갑내기 집안 아재/고향 땅 어루만지던 흙 묻은 손 내민다/중학교 마치면서 엇갈렸던 생의 회로/너른 들판 농사지을 꿈을 꾸던 그 얼굴에/쨍하고 햇살 무늬가 퉁겨지고 있었다/물 깊은 열 마지기 발을 빼지 못한 채/혼자 된 어르신들 알전등 끼우느라/생머리 나풀거리던 아가씨도 놓쳤다/비바람 견뎌내며 열매 맺는 벼들처럼/내 안에 갇혔던 말 풀어놓고 웃는 날/친구들 모두 불러서 풍물 한번 치잔다

「바람의 여백」(2021, 책만드는집)

박홍재 시인은 경북 포항 기계에서 출생했고, 2008년 나래시조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말랑한 고집’, ‘바람의 여백’ 등이 있다. 시인은 ‘고향 아재’를 쓰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들려준다.

추석을 맞아 고향을 찾아가면 꼭 고향 아재 같은 사람이 있다. 산업화를 견뎌오면서 우리의 자화상인 것 같다. 아직도 시골에는 장가 못 간 노총각이 많다. 이들의 아픔이기도 하다. 빨리 짝을 찾아 저 쓸쓸함이 없어졌으면 싶다. 오순도순 가정을 갖고 웃는 모습을 기대한다.

따사로운 인간애를 느낀다. ‘고향 아재’에서 시의 화자는 멀리서 바라봐도 꾸부정한 저 어깨는 곡괭이 닮아버린 동갑내기 집안 아재 고향 땅 어루만지던 흙 묻은 손 내민다, 라고 첫수에서 노래하고 있다. 그 아재는 흡사 흙의 아들처럼 고향 땅을 어루만지던 흙 묻은 손으로 조카를 맞아준다. 얼마나 정겨운 일인가? 화자는 중학교 마치면서 엇갈렸던 생의 회로이고, 너른 들판 농사지을 꿈을 꾸던 그 얼굴에 쨍하고 햇살 무늬가 퉁겨지고 있었던 것을 또렷이 기억한다. 물 깊은 열 마지기 발을 빼지 못한 채 혼자 된 어르신들 알전등 끼우느라 생머리 나풀거리던 아가씨도 놓쳐버린 아픔 사연을 보듬고 사는 아재다. 이 대목에서 안타까움이 커서 마음이 더없이 짠해진다. 비바람 견뎌내며 열매 맺는 벼들처럼 내 안에 갇혔던 말 풀어놓고 웃는 날에 친구들 모두 불러서 풍물 한번 치자고 하니, 꼭 그렇게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몹시도 인간적인 시편이다. ‘고향 아재’와 같은 사연을 가진 이들이 아직도 우리 농촌에서는 적지 않을 것이다.

그는 바다 건너 제주를 노래하고 있다. ‘다랑쉬오름’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들릴 듯 보일 듯이 얼굴을 가린 채로 다소곳이 앉은 거기 여몄던 치맛자락을 펼쳐 보인 저 맵시, 라고 다랑쉬오름의 모습을 애틋하고도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실감실정이다. 이어서 반지라운 가르맛길 연초록 물항라다, 라면서 옴팡진 가슴팍에 품은 하늘 오롯하고, 봉긋이 한몫잡이로 맵시 갖춘 꽃자리라고 점입가경의 묘사를 보탠다. 또한 몸 낮춘 마음가짐 무던히도 출렁인다, 라고 역동성을 부여하면서 제주 땅 안방마님 들어앉은 행간마다 해녀들 잘록 허리도 오름 능선 닮아 간다, 라고 끝맺는다. 이로써 다랑쉬오름의 미학적 질서는 극치에 이른다. 결구에서 해녀가 등장한 것은 이 시편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제주가 고향인 시인들보다 몇 번씩 찾아간 시인들이 쓴 시편이 더욱 호소력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이것은 솜씨나 기량 문제와는 다른 일이다. 오히려 거리를 두고 멀찍이서 바라보며 생각을 오래 다듬을 수 있는 점에서 외지의 시인이 더 객관성을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고향 아재’와 ‘다랑쉬오름’을 살피는 동안 늦가을 아침 햇살이 창으로 환히 뛰어 들어 온다. 오늘도 시조와 더불어 하루를 시작하니 이 어찌 기쁘지 않으랴?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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