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 현장을 가다 (99) 무설초

발행일 2021-11-16 18:53:4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와송과 여주를 이용한 기능성 식초로 건강을 가꾸는 강소농

좋은 원료로 좋은 식초 생산…나와 다른 사람의 건강까지 챙겨

식초와 술 담그기 체험과 귀농체험을 융합한 6차 사업화 추진

문애자 대표가 전통 옹기에서 숙성 중인 식초의 산도 측정을 위해 샘플을 채취하고 있다.
식초의 역사는 길다. 기원전 5천 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건포도와 대추야자가 발효돼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긴 역사만큼 이야기도 많다.

식초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구약성서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모세’가 아랍어로 ‘시에히게누스’로 붙였다.

중국에서는 술을 처음 만든 ‘두강’의 아들이 식초를 만들었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사랑 이야기, 흑사병에서 살아남은 도둑 이야기, 대항해에서 식초에 절인 채소를 먹었던 콜럼버스의 이야기 등등 수없이 많다.

대부분 식초의 효능과 맛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이중에서도 압권은 클레오파트라와 로마의 권력자 안토니우스의 사랑 이야기다. 안토니우스를 유혹하고자 클레오파트라는 환영연회에 100만 세르테르티우스(로마 화폐단위)의 거액을 쓸 수 있다고 했다.

안토니우스는 너무 거액이라 믿지 않았다. 당시 로마군인의 1천 명의 연봉을 합한 액수였다. 다음날 연회에서 클레오파트라는 식초를 담은 잔에 귀걸이에 달린 진주 하나를 넣었다. 진주가 식초에 녹자 단숨에 마셔버렸다. 100만이 아니라 1천만 세르테르티우스나 하는 최고급 진주였다.

남은 진주를 마저 넣으려고 하자 놀란 안토니우스가 급하게 말렸다. 클레오파트라의 대범함에 안토니우스는 마음을 빼앗겼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다.

김천에서 자신의 건강경험을 토대로 기능성 발효식초를 만드는 강소농이 있다. ‘무설초’의 문애자(64) 대표다. 농장 이름이자 브랜드인 무설초는 설탕과 같은 인공적인 당(糖)이 없는 건강한 먹거리라는 의미를 담았다.

문애자 대표가 발효탱크에서 발효 중인 식초를 살펴보고 있다.
◆전업주부의 식초 도전

“제가 식초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운명이었던 같다”며 “앞으로도 계속 식초를 만들고 효능을 알리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문 대표는 말한다.

부산에서 전업주부로 생활하던 중 건강이 나빠져 큰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유증이 심했다. 손발에 통증이 가시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통증은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아이들이 대학만 졸업하면 시골로 들어가 조용히 살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중 한 방송을 통해 식초의 효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염증을 제거하고 근육 속의 피로물질을 줄여 준다는 등 꾸준히 마시면 좋다는 내용이었다. 귀가 솔깃했다.

그때부터 식초를 마시면서 식초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2015년 막내의 대학 졸업에 맞춰 김천으로 들어왔다.

귀농이 아니라 귀촌이었다. 시골생활은 편안했다.

그동안 건강도 회복됐다.

시골의 쾌적한 환경 때문인지 꾸준히 마신 식초 덕분이지 알 수는 없지만 건강이 좋아진 것은 확실했다. 주변의 소개로 농업기술센터를 드나들면서 식초가공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식초의 사업화를 시작했다.

찰현미 아로니아 식초.
◆기능성 식초로 승부

문 대표가 만드는 모든 식초에는 건강 관리라는 방점이 찍혀있다. 식초를 마시기 시작한 것도, 식초를 만들기 시작한 것도 자신의 건강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강관리를 위한 기능성 식초를 만든다.

기능성 식초는 와송 식초와 여주 식초, 우엉 식초로 모두 3가지다.

와송 식초는 와송에 있는 항암효과와 염증완화 효과를 식초에 가미한 것이다. 동의보감과 본초강목에 와송은 항암작용이 뛰어나고, 해독작용으로 혈액을 맑게 해 준다고 기록돼 있다.

여주 식초는 당뇨 환자들을 위한 것이다. 우엉 식초는 다이어트가 목표다. 장 기능을 활성화 시키고 변비 예방에 좋다는 사실을 알고 식초에 도입했다.

다이어트를 위해 많이 마시는 우엉차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만드는 과정이 그렇게 특별하거나 어렵지도 않다.

고두밥에 입국과 정제된 효모를 순서대로 접종하고 발효 과정을 거친다. 효모가 충분히 증식되면 다시 와송 우린 물과 찰현미 고두밥을 혼합해 넣고 알콜 발효와 초산 발효를 거치면 완성된다.

완성 후에는 1년 이상 숙성을 시킨 다음에 판매한다. 무설초의 또 다른 특징은 농장 이름처럼 설탕을 전혀 첨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는 와송 식초만 판매하고 여주와 우엉 식초는 장기 숙성이다.

찰현미 와송 식초.
◆좋은 원료로 좋은 식초를

좋은 원료를 사용해 좋은 식초를 만든다는 것이 문 대표의 식초 철학이다.

모든 음식이든 가공품이든 맛과 효능은 좋은 원료에서 출발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식초의 기본 원료인 현미찹쌀은 인근 농가에서 직접 구입한다.

재배 과정을 수시로 둘러보고, 수확기에 품질을 확인 한 이후에 구입한다. 최고 품질의 원료를 구하기 위한 노력의 일부다.

현미찹쌀은 껍질이 두꺼워 식초의 전 단계인 술을 만들기 어렵지만 현미찹쌀을 고집하는 것도 쌀의 모든 영양 성분을 고스란히 품고 있기 때문이다.

와송과 여주, 우엉은 직접 무농약으로 재배한다.

수확 후에는 세척과 절단 과정을 거치고, 건조해서 냉동 보관한다. 건조한 상태라 상온에서 보관도 가능하지만 보관 중에 습기로 인해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대량 생산도 가능하지만 소량 생산을 하는 것 역시 품질관리를 위해서다.

저장탱크에서 발효탱크를 거치고 항아리로 옮겨 담는 모든 과정을 자동 이송장치를 이용한다. 이송 과정에 외부의 이물질이 혼입되거나 잡균에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작업을 마친 모든 용기와 기계설비는 철저한 세척작업을 한다. 물 세척에 이어 식용유 세척과 뜨거운 물 세척의 3단계 세척을 통해 항상 청결한 상태를 유지한다. 좋은 원료와 청결한 관리가 고품질의 기본이라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황토 숙성실에서 숙성 중인 식초 옹기들.
◆보물같이 다루는 숨 쉬는 옹기

옹기는 식초의 휴식처다.

식초는 옹기 속에서 1년 동안 긴 휴식기를 가진다. 마치 동굴 속에서 겨울잠을 자는 반달곰처럼.

옹기 속에서 숙성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1년 간의 숙성이 끝나면 세상에 나온다.

옹기는 식초에 있어서는 안락한 집과 같다. 그래서 숨 쉬는 전통옹기를 사용한다. 울산지역에서 유명한 옹기 장인이 만든 수제 옹기다. 식초를 담기 전에 짚불로 소독을 한다. 옹기 속에 불을 붙인 짚을 넣고 뚜껑을 덮는다. 옹기 속에는 연기가 가득 찬다. 옹기 벽에 있는 미세한 기공 속에까지 연기를 침투시킴으로써 기공속의 잡균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다. 2차로 다시 짚불을 넣어서 소독을 한다. 이렇게 하면 옹기 속에 짚불의 향기가 남는다.

짚불로 2회에 걸쳐 소독을 마치면 물로 세척하고 식초를 담아서 숙성을 시작한다.

실내에서 보관하기 때문에 먼지나 흙 등이 묻지는 않는다. 그러나 수시로 깨끗한 행주를 이용해 옹기 포면을 닦는다.

숨 쉬는 옹기인 만큼 언제나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옹기는 보물단지”라며 “보물단지를 보물처럼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문 대표는 강조했다.

무설초의 식초들. 왼쪽에서부터 와송식초, 우엉식초, 여주식초, 아로니아식초, 와송식초.
◆ 식초 명인과 6차산업

문 대표는 욕심이 많다. 특히 교육에 대한 욕심에는 끝이 없다.

부산에서부터 시작한 식초 공부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농업기술센터와 농민사관학교 등 농업전문기관에서 꾸준히 교육을 받는다. 식초 뿐만이 아니라 여성아카데미, 인문학 등 과목과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 대학의 식초 전문 교수를 찾아가 특별 수업도 받는다. 인터넷 강의까지 포함하면 연간 500시간 정도를 교육에 투자한다.

이처럼 많은 교육을 바탕으로 더 좋은 식초를 만들고 식초 명인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꿈이다. 새로운 제품 개발에 대한 열정도 만만찮다. 연근과 병아리콩, 팥을 발효시킨 효소 수프도 즉석 식품으로 개발했다.

효소 수프를 급속 냉동시켜 ‘효소바’로 발전시켰다. 조만간 상품화를 할 예정이다. 농장에 체험 공간을 마련하고 식초와 술 담그기 체험도 준비 중이다. 귀농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귀농체험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다.

자신이 터득한 식초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해 안정적인 귀농을 돕고 싶어서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 시작한 식초를 활용해 본격적인 6차 산업화를 추진하겠다는 문 대표의 큰 그림이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민간전문위원)

이동률 leedr@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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