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0대 대선을 석달여 앞두고 나랏돈 풀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먼저 전국민 재난지원금으로 치고 나갔다. 뒤질세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50조 원 자영업자 손실보상 카드로 뛰어들었다. 돈풀기 공약은 표를 매수하려는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되레 국민의 걱정만 더하는 모양새다.

민생관련 정책을 공약의 최우선 순위에 놓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재난 지원에는 엄청난 규모의 재원이 들어간다. 국민 공감대, 합리성, 다른 국정 과제와의 균형, 예산조달 방안 등이 중요하다.

이재명 후보는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민주당은 반대여론이 높아지자 ‘전국민 일상회복 방역지원금’으로 이름을 바꿨다. 실체는 그대로 둔 ‘케이스 갈이’다. ‘눈 가리고 아웅’이 따로 없다.

---민생 공약, 국민들 공감대 형성 중요

이 후보는 코로나19로 고통을 입은 모든 국민에게 1인당 30만~50만 원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3일 민주당 첫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적극 추진해달라고 당부했다. 대선 후보가 요구했으니 민주당은 외면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금액을 줄여 1인당 20만~25만 원을 언급하며 재원조달 방안을 구체화했다. 대선 전 내년 1월 지급이 목표다.

민주당이 줄인 수준으로 해도 최소 10조 원 이상이 필요하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재정 여력이 없다”, “현재로선 대책이 없는 이야기”라며 연이어 부정적 견해를 피력했다. 민주당은 올해 세금을 내년에 걷어 재원을 마련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국세징수법에 저촉돼 어렵다”고 국회에서 답변했다. 미룰 세금도 마땅찮다고 한다. 국가재정법의 근간을 흔드는 사상 유례없는 일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전국민 지원금은 투입 금액 대비 효과가 기대에 크게 못미친다는 국책 연구기관의 조사 결과도 나왔지만 민주당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앞서 이 후보는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금융 등 기본시리즈를 공약으로 선보였다. 정부가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책임진다는 발상이다. 어디까지 가능할지 의문이다.

윤석열 후보의 50조 원 공약도 마찬가지다. 뜬금없다. 무리한 재정확대에 반대해온 국민의힘 정책기조와도 배치된다. 여론은 “윤석열도 이재명과 유사한 길을 가려하나”라는 반응이 많다. 그는 경선 승리 직후 새정부 출범 100일 동안 50조 원을 투입해 정부의 영업제한 등으로 인한 자영업자들의 피해를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50조 원은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엄청난 금액이다. 내년 정부 예산안 604조4천억 원의 8.3%에 이른다. 연간 국방예산(55조3천억 원)과 비슷한 규모다. 재원은 국채발행, 초과세수, 예산절감분 등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아니다 싶으면 물러설 줄도 알아야

윤 후보 측은 피해계층 집중지원이어서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민주당의 보편지원과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큰 그림 뿐이다. 현실성이 크게 떨어진다. 무엇이든 살림 규모에 맞아야 하는 것은 가정이나 국가나 같다. 국민들은 윤 후보가 후보 수락연설에서 이 후보를 포퓰리스트라고 비난한 뒤 돌아서서 50조 원 이야기를 꺼낸 데 대해 고개를 갸우뚱한다.

큰 뼈대는 지난 9월 경선캠프에서 발표한 ‘코로나 극복 긴급구조 플랜’에 담긴 이야기라고 한다. 그렇지만 정식 후보가 된 뒤 밝힌 첫 공약이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공약실천 방안을 찾겠다면서도 무리수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한발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경선 과정에서 일어났던 공약이기 때문에 충분히 논의한 공약이 아닌 것은 맞다. 그런 논의를 시작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코로나로 피해를 입은 국민을 돕자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정치적 목적을 깔고 접근해선 안된다. 대선 후보가 한번 뱉은 말은 당선 후 족쇄가 된다. 상황이 바뀌어도 취소하기 어렵다.

국민은 꼼수와 무리수에 혹하지 않는다. 많은 국민이 이런 식의 공약은 안된다는 반응을 보인다. 정부도 두 후보의 나랏돈 풀기 공약에 반대한다. 아니다 싶으면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 너무 강하면 부러질 수 있다.

지국현 논설실장



지국현 기자 jkh8760@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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