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임세빈 ‘삼재불입지(三災不入地)’

발행일 2021-12-01 17: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코로나19가 창궐한다. 직장, 식당, 체육관 어디를 가도 안전한 곳이 없다. 바깥을 나가려면 마스크를 끼어야 하고, 집에만 머물자니 숨이 막힌다. 이 재난에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 인터넷에 들어가 여행기를 읽는다. 어딘들 나를 끌어당기는 곳이 있으면 재난을 피해 가볼 심산이다.

재난이 들지 않는 곳은 어떤 곳일까. 내로라는 명승지는 거의 다 가봤어도 삼재불입지는 생소하다. 가고 싶은 곳, 찾고 싶은 것, 궁금증이 머리끝까지 솟아올라 좀체 가라앉지 않는다. 인터넷을 뒤적이며 이것저것 알아본 뒤 날을 벼르다가 봉화 춘양에 있는 각화산으로 핸들을 돌린다.

각화사는 신라 신문왕 때 원효가 지은 절이다. 인근에 있던 남화사를 옮기면서 ‘그 절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각화사(覺華寺)라 지었다고 전한다. 한때는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절이다. 소임을 다한 지금은 무거운 역사의 짐을 내려놓은 듯 아담한 모습으로 가부좌를 틀었다. 햇볕을 끌어 안 듯 양지에 앉은 절의 품이 안온하다.

대웅전 옆 샘물로 목을 축이며 산 위를 바라본다. 능선과 능선이 만나는 저 높드리 어디쯤이 아닐까. 위치를 가늠하고 비탈길을 오른다. 동박새, 두견이, 울새소리가 뒤따르며 귀청을 살랑댄다. 하늘로 죽죽 치솟은 금강송이 나뭇잎 사이로 무수한 바코드를 그린다. 녹음 우거진 능선을 오를수록 공기가 청량해진다. 가파른 능선 따라 들숨과 날숨을 주고받다 보니 몸속이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각화산은 여느 등산로와는 달리 가지 않은 길이 사방으로 뻗어 있다. 인적이 드문 산이기 때문이다. 프로스트의 시(詩) ‘가지 않은 길’을 걷듯 흔적이 흐릿하다. 길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없어 GPS를 연신 들여다보며 오른다. 나무와 풀이 우거질 대로 우거져 한참을 헤맸다. 잘못 들어선 길을 헤치며 오르내리기를 수차례, 드디어 나무와 숲이 끊긴 자리에 섰다.

잡초로 뒤덮인 빈터는 황량하다. 빈터는 잿더미를 깔고 누운 채 녹의(綠衣)를 입고 있었다. 구름 눈물이 머물다 간 자리, 쓰린 눈비를 맞으면서 아픈 것도 잊고 있었다. 죽은 이가 든 묘라면 술잔이라도 기울 수 있건만, 가진 게 아무것도 없으니 무명의 한 꽃무덤을 딛고 선 듯 아린 마음이 일었다. 사고는 온 데 간 데 없고, 나직하게 두른 석축 문패만이 빈 사고지를 감싸 안고 있다.

사고는 해방 전후 누군가의 방화로 완전히 소실되었다. 그 후 산사태가 일어나 잔해들이 매몰되고 나무들이 들어차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건물은 실록각(實錄閣), 선원각(璿源閣), 폭쇄각, 근천관(近天館) 등 부속 건물로 이루어졌다는데, 사방을 둘러보아도 누각 한 채 섰을 모습이 눈에 들지 않는다. 여기가 사고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잡초 위에 쓰러져 뒹굴고 있었다.

임진왜란 때 사고가 소실되자, 왕실은 오지의 깊은 산속에 사고를 다시 지었다. 화재, 수재, 풍재 등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곳을 택하여 사서를 보관했다. 태백산 사고는 임진왜란이 끝난 선조 때 삼재와는 거리가 먼 길지(吉地)라 여긴 이곳 춘양에 조성하였는데, 당시 한양의 춘추사고와 강화의 정족산, 무주 적상산, 평창의 오대산 사고와 함께 조선 5대 사고지에 들었다.

사람들은 이상향을 꿈꾸었다. 난리를 피해 몸을 보존할 수 있는 살기 좋은 환경을 찾아 떠난다. 물이 흐르고, 먹거리가 풍성한 곳, 외적의 침입을 받지 않는 그런 곳을 살고 싶은 명당자리라 여겼다. 토지의 규모나 땅이 얼마나 비옥하고, 온화한 기후를 갖추고 있는가도 따져 볼 일이었다. 재난이 일어날 때, 피난을 가면 안전하다는 열 군데가 바로 조상들이 꿈꾸었던 이상향으로 십승지(十勝地)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고지는 사람으로 치면 단전(丹田) 바로 아래다. 양쪽으로 골짜기가 있어 물이 잘 빠지고, 볕이 잘 들어 습기가 없는 지형이다. 아래로 흐르는 양쪽 능선 가운데 오목하게 자리를 잡아, 멀리서 보면 여기에 사고가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이다. 바깥세상의 화만 미치지 않는다면 어떠한 재난도 들지 않는 땅이다.

그런데 화마가 들었다고 전하니 필경 사람의 짓이다. 우리 것조차 지키지 못할 정도로 쇠약한 나라, 백성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에 십승지가 있다고 한들 성하겠는가. 나라가 부강해 전쟁이 없는 나라, 왕이 어질어 백성을 잘 돌보는 나라, 이웃과 이웃에 정이 넘치고, 마을과 마을 사이 우애가 깃든 나라가 바로 십승지가 아닐까 싶다.

찬란한 역사는 유적을 남기지만, 망한 역사는 폐허를 남긴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것은 무형(無形)을 마음으로 긁어 아프고, 무성(無聲)을 바람으로 맞아 시리다.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면 아픈 상처도 치유될 텐데, 사람 몇 들지 않는 곳이라고 홀대하고 버려두는 것은 아닌지 황량한 가슴을 쓰다듬어 본다.

폐허 위에 상상으로 사고를 지어본다. 저 아래 보이는 금강소나무 몇 그루 베어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서까래를 걸친다. 여기저기 나뒹구는 기왓장을 모아 서까래 위에 올린다. 돌을 모아 담장을 쌓고 축대도 손보고, 흩어진 사금파리를 모아 퍼즐처럼 맞춘다. 그러고는 단청도 멋지게 칠해본다. 황량한 마음에 집 한 채 들어서니 쓸쓸하던 빈터가 조금은 덜 허전하다.

인간의 삶에서 재난은 피할 수 없는 운명과 같다. 재난을 당하면 극복하는 것 또한 운명이다. 이 재난을 하루라도 빨리 이겨내어 일상을 되찾기를 바라면서 서둘러 속세로 향한다. 응원이라도 하는가. 쪼록쪼록, 뾰롱뾰롱 산새소리가 뒤를 따른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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