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이일근 ‘삼강나루’

발행일 2021-11-30 17: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우리나라 역사는 한의 역사라고 한다. 한을 노래하는 가사에는 강이 자주 나온다. 강에는 나루가 있고 둥구나무도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포(浦) 또는 진(津)으로 된 지명이 많다. 마포, 삼랑진 등이 대표적이다. 나는 그런 곳으로 가서 회상에 잠기기를 좋아한다. 이는 곧, 아픈 역사는 강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라는 관심이었다.

옛 나루에서의 나는 오늘도 그날을 떠올린다. 내가 생각에 잠기자 강물은 이내 화면으로 바뀐다. 화면에서는 한 노파의 얼굴에 많은 인파가 오버 랩(Over Lap)되면서 나타난다. 그랬다. 나루에는 사람이 많았다. 오고 가는 사람들로 포구는 늘 붐빈다. 그런데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이 이별과 가난에 따른 한이었다. 사람들 옷에 걸쳐져 있는 어떤 무게들이 그렇게 보이도록 한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강물 아래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내던지고 있다.

무거운 시름을 안고 낙동강을 건널 적에 그 시대 사람들은 저것들을 강으로 내던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강을 건너는 동안의 잠시라도 한(恨) 같은 시름에서 해방되고 싶은가 보다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강을 건너게 되자 던져진 시름들은 다시 달려와 좁은 가슴을 넓게 차지하는 것을 보면 이는 그 시대 사람들의 운명이 아닐까 싶다. 세상 주인은 시름이고 사람은 시름의 노예와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오늘의 ‘영화’는 말해주고 있었다.

사람이 열이면 백 개나 되는 시름들을 태운, 그것들을 강물에 내던졌다고는 해도 미처 다 던지지 못한 시름으로 인하여 건너오는 나룻배는 더욱 위태위태해 보인다. 금방 침몰할 것 같다. 그런데도 침몰하지 않는다. 노를 젓는 사공의 근심은 더 무거운 것이었으니 뱃사공 무게가 배의 균형추 역할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뱃사공 얼굴이 이윽고 페이드 아웃(F.O)으로 사라지자 나는 눈길을 돌린다. 저기서는 둥구나무가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배를 내려 길을 걷다가 여름이 따갑게 느껴지면 그 시대 사람들은 저 나무 밑을 찾았을 것이다. 그늘에 앉아서 좀 쉴 즈음, 좁은 가슴을 휘젓고 다니던 시름들이 나무 아래서는 그새 두 배로 팽창하여 얇은 가슴을 날카롭게 찢어대지 않았을까 싶다. 강을 건너는 짧은 시간과는 다른, 나무 밑에서의 긴 상념이 만들어낸 결과가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나무 옆으로 가본다.

나는 그날에 몰입된다. 둥구나무 아래에서 나그네가 내쉰 뜨거운 시름 깊이는 얼마였을까.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한숨으로 내쉬고 내쉰 차가운 근심 무게는 얼마였을까. 이 나무를 약속 장소로 했다가 아프게 헤어진 사랑은 또 얼마나 많을까. 이런 생각의 나는 나무 앞으로 바짝 다가선다. 나는 거친 피부를 가진 나무를 안아본다. 오고 간 이들의 만남과 이별 등 아픈 사연들까지 다 담고 있을 나무를 안는다. 보고 듣기는 했지만 차마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은지 나무 가슴은 내 아름으로 한 아름 반이나 되었다. 크게 안아준 나는 오래전 겨울의 둥구나무를 떠올려본다. 역시 그날은 흑백 영화로 다가오고 있다.

이는 회상이다. 페이드 인(F.I)으로 다가온 나무는 인내하는 존재로 보인다. 참고 참다가는 겨울이 되어서야 토해낼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알게 된 사연들을 말하기에는 한겨울이 좋은 것 같았다. 겨울 이전에는 그저 듣기만 하다가 찾는 이 없는 겨울이 되자 쌓아둔 말들을 한껏 토해내고 싶어 한다. 가슴을 비우기 위해, 그렇게 해야 내년 여름을 또다시 채울 수 있기 때문이리라.

세찬 북서풍을 받아들이면서 가슴을 열고 있는 둥구나무가 클로즈 업(C.U)되어 나타난다. 열지 않으면 한처럼 묻어둔 이것들을 주체하지 못해 미치게 될 것이며, 이와 같은 생각의 나무는, 늦은 봄에서 이른 가을까지의 아픔들이 겨울 음악으로 승화(昇華)되기를 바라면서 더욱 넓게 연다.

둥구나무는 자신을 버린 지가 오래되었다. 한 같은 사연들을 발효시키느라 큰 가슴이 썩어 내린 지는 수백 년이나 되는 것 같다. 투박하게 보이는 피부와는 달리 여린 가슴을 가진 나무는 아까부터 심호흡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미 뒤틀린 몸인데도 몇 번의 심호흡으로 더 크게 뒤틀자 지난여름은 마침내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나무 가슴을 박차기 시작한다. 나무 가슴을 뚫고 나온 그것들은 줄을 지어가면서 겨울 한가운데로 날아간다.

바람들이 수백 개의 나뭇가지에 동시적으로 부딪히는 소리는 날카로운 함성으로 들린다. 이 아우성들은 절규로 날아가다가 강 건너 마을을 지나면서는 음악으로 변할 것이고, 그랬다. 둥구나무 가슴에 머물다 나온 숙성의 결과는 음악이었다. 잠 못 이루는 사람들에게는 아련한 자장가로 들릴, 여기에는 부엉이 소리도 군데군데 섞였으니 그 시절 겨울나무 음악은 전설과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오늘 영화는 한동안 디졸브(dissolve) 기법이 들어있는 페이드 아웃과 페이드 인을 반복하면서 더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해마다의 한을 태풍 같은 몸부림으로 날려 보낸 둥구나무의 과거가 드디어 화면에서 사라지자 나는 나무 곁에 앉는다. 잎들이 떨어진다. 가슴으로는 오롯이 다 채우지를 못해 화석 형태로 머물러 있는 주변의 옛 이야기 하나하나마저 꼼꼼히 기록하다가 ‘글자’의 무게를 더는 감당하지 못하는 잎은 꽃처럼 낙하하고 있었다. 나뭇가지에 여리게 붙어 있다가 떨어지는 단풍을 나는 줍고 또 줍는다.

근처에 있는 나무들은 이제 제 몸 하나도 추스르지 못하는 것 같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높이 자라다가 세월의 무게가 무거워서인지 이제는 낮은 땅을 향하며 비스듬히 기울고 있다. 잎 하나에서도 힘겨워하는 나무가 측은하게 보여 나는 문득 잎을 따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잎 하나라도 덜어내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무척 감성적인 생각도 해본다. 낙동강 역사로 된 ‘삼강나루’의 ‘어제’를 이들 잎에서 좀 더 세밀히 읽어낼 수 있다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해마다의 겨울에 날려 보냈다고는 해도 차마 다 보내지 못해 조금은 남겨둔, 그리하여 오로지 농축된 사연으로 스며있을 어제를, 수백 년, 아니 수천 년 전에서부터 시작된 낙동강의 어제 모두를 이들 잎에서 읽어낼 수 있다면 잎이 하는 말은 대하소설로 변하여 나를 매료시킬 것이다. 그랬다. 손에 안기는 낙엽들에서 벌써 튀어나오고 있는 것은 ‘천년을 살고 만년을 산 낙동강, 낙동강, 강물 따라 흘러가는 이 내 인생 어이 할까나’라는 그날의 뱃사공 노래였다. 노래가 환청으로 들릴 때 주린 배를 달래주던 주막은 그날 모습으로 떠오르고, 삶의 무게들을 저 나무 아래에 잠시라도 내려놓고 싶어 하던 그날의 보부상 얼굴은 세밀화로 그려진다.

남녀 관광객 몇 명이 둥구나무 앞으로 다가선다. 그들도 나무를 바라보다가 주막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 주막이 왜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34호로 지정되었는지를, 그 깊은 사연을 유옥연 주모 할머니가 남기고 간 흔적에서 찾아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내성천이 금천을 불러들이고, 낙동강의 넓은 가슴이 두 강을 안아줌으로써 3강이 된 삼강나루 석양은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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