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 살인’이 또 발생했다. 대구에서 홀로 아버지의 간병을 도맡던 스물 두살 청년이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아버지를 방치해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 드러났다.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면서 각계에서 선처를 탄원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젊은 돌보미’의 실태 조사와 함께 사회안전망을 점검해 다시는 유사 사례가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사회 시스템의 문제다. 정작 국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국가는 없었다. 우리 사회가 천문학적 규모의 복지 예산을 투입하고도 곳곳에서 적잖은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복지 시스템 전반을 더욱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이 청년의 아버지는 노동자로 일하다 지난해 9월 뇌출혈로 쓰러져 누워 생활하는 처지가 됐다. 병원비는 친척 도움으로 겨우 해결했다. 하지만 병원비 부담에 퇴원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휴대전화와 도시가스도 끊긴 채 생활고에 시달리다 결국 아버지를 굶겨 숨지게 했다. 법원은 1심에서 존속살해 혐의를 적용, 징역 4년을 선고했다. 2심 선고를 앞두고 각계의 탄원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 청년은 기초 생활보장제나 긴급복지 지원 등 기존 복지제도 안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본인이 신청하지 않아 실제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다. 지자체의 취약계층 관리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청년의 아버지가 숨진 뒤에야 지자체 관리망에 이름이 올랐다고 한다. 당사자 신청이 없더라도 단전·단수 등 ‘위기 신호’를 통해 위기 가구를 발굴하겠다고 한 정부의 공언은 공수표가 됐다.

저출산·고령화 속에 젊은 돌보미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관련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 3만 명 가량의 젊은 돌보미가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사회 곳곳에 ‘간병 살인’ 형태로 그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선진국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간병 살인과 간병 파산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영국은 2019년부터 젊은 돌보미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고, 호주도 젊은 돌보미에 학비보조금을 주고 있다. 일본은 육아, 가사노동, 간병 등으로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 젊은이들에게 가사노동과 간병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대구시 등 지자체는 가족 돌봄과 간병을 도맡은 ‘젊은 돌보미’에 대한 실태 파악과 함께 지원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더 이상 돌보미 가족의 비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라고 하지만 복지 체계를 꼼꼼히 점검해 긴급 돌봄 프로그램 등에 빈틈이 없도록 해야 한다.



홍석봉 기자 dgho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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