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불붙어도 되는 걸까// 한 나무가 다른 나무 향하는 마음 깊어지면/ 왕릉 앞인들 상피 붙겠다// 내 몸에 나뭇잎 다 떨구고 난 뒤에도/ 불타오를 수 있다는 그것// 물푸레나무 바라보는 하늘이 눈부시기 때문인데// 달빛보다 환하게 몸살 앓는 꽃자리/ 당신과 나는 활자와 활자 사이, 지워지고 지워지는 사이/ 불탄 나무의 속삭임 몸 시리다// 이게 제대로 사는 걸까 제대로 죽는 걸까/ 물푸레 여린 나뭇가지 어깨 살짝 깨물어 보니/ 아. 흐. 낮은 콧소리// 발밑에 검붉은 세월 묻어두고/ 강물 넘치도록 아우성치며 불타오르는 나무// 참 깊은 종소리다

「불탄 나무의 속삭임」 (곰곰나루, 2021)

지나간 세월과 과거사가 쌓이고 쌓여 삶을 무겁게 내려누르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시인은 무릎 꿇거나 꼬꾸라지지 않는다.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도 연모하는 마음만 깊고 돈독하면 어디서든 사랑은 가능하다. 험난한 세월에 치여 몸에서 살이 다 떨어져나가도 뼈대는 더 단단해지고 마음은 더 깊어지는 사람이 시인이다. 삶에 쫓기고 세파에 시달려도 시혼은 오히려 불타오른다. 험한 세상살이에 몸이 고단해도 마음만은 사랑으로 가득 차오르니 능히 시를 생산할 것이다.

불탄 나무도 불타오르듯 심지만 깊으면 살아간다. 먹고사는 일에 쫓기어 시를 멀리 두어도 시심만 깊게 간직하고 있으면 언제든지 시는 발아한다. 불탄 나무가 숯이 돼 더욱 환하게 타오르듯이 몸에 불이 붙을 지라도 의지만 굳다면 몸을 불살라 밝게 불 밝힐 수 있다. 권력에 겁먹거나 먹고사는 일에 결코 좌절하지 않을 터, 생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시를 쓰고, 쓰다가 잘못되면 지우고 다시 쓸 터.

불타다 남은 불탄 나무가 다시 불타오를 수 있는 건 눈부신 하늘이 있기 때문이다. 불탄 나무가 오히려 더 강한 불꽃을 피우는 것은 몸살 앓은 꽃자리가 달빛보다 환하게 빛나기 때문이다. 불탄 나무의 속삭임이 시가 되고 몸살 앓은 꽃자리의 환한 빛도 시로 거듭난다. 고난과 역경은 쇠를 담금질하듯 사랑을 더욱 단단하게 단련할 뿐.

그래도 삶에 대한 의혹은 사라지지 않는다. 왜 사는 걸까.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 걸까. 이러한 의문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는 굳센 의지나 자기 긍정을 기대하기 힘들다. 근본적인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인생이다. 인생의 정체성을 인식하지 않고는 존재감이나 자존감은 없다. 그런 가운데 스스로를 긍정하는 힘이 생기고 그 속에서 자아를 지킬 수 있다. 스스로를 긍정하고 자아를 다듬는 과정 중에 비로소 시가 잉태된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은 긍정의 세계와 닿아있다. ‘불붙어도’, ‘나뭇잎 다 떨구고 난 뒤에도’, ‘몸살 앓는’ 일이 있어도, 시인은 기죽지 않는다. 시련과 궁핍에 직면하고서도 긍정의 세계에선 거뜬히 이겨낼 수 있다. 떨어져 있어도, 권세가 지켜보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은 믿음은 사랑을 가능하게 한다. ‘불탄 나무의 속삭임’과 ‘살짝 깨물어’, ‘낮은 콧소리’ 그리고 강물의 ‘아우성’과 ‘참 깊은 종소리’ 등 에로스적 상상력을 통해 강렬한 생명력과 시적 열망을 드러낸다.

‘검붉은 세월 묻어두고’, ‘강물 넘치도록 아우성치며’, 불탄 나무가 불타오르면, 시심이 발동하고 마음 속 참 깊은 곳에 ‘종소리’가 울린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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