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책과 숲은 꽤나 잘 어울리는 단어다. 책 좀 읽었다는 이들이 사용하는 ‘지혜의 숲’ 또는 ‘사유의 숲’이란 표현은 책을 의미한다. 또는 도서관을 비롯해 책이 모인 공간을 상징하기도 한다. ‘나무가 책이 되고, 책들이 지혜가 되는 지혜의 숲’이란 표현도 본 적도 있다. 출판도시로 유명한 경기도 파주의 출판도시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1층에는 ‘지혜의 숲’이 존재한다. 학자, 지식인, 연구소가 기증한 가치 있는 책을 보존하면서 함께 이용하는 공동의 서재로 운영되고 있다. 기증자의 삶과 가치를 책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지역의 서점들이 문을 닫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부산의 뜻있는 시민들은 “책들의 숲이 사라진다”라고 표현했다. 이 말에는 작은 새 한 마리도 따뜻하게 품어주는 숲과 같이, 서점은 우리의 생각을 소중하게 품어주는 책을 품어주는 숲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 자연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자는 뜻에서 ‘우리 마음 속에는 저마다 숲이 있다’는 책이 출간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책과 숲을 조합한 이름도 적지 않다. ‘책의 숲을 거닐다’란 제목의 독서노트가 시판되고 있으며, ‘미디어숲’이란 출판사도 있다.

수성구립도서관에도 숲이란 단어가 포함된 도서관이 있다. 무학숲도서관과 책숲길도서관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약간의 차이는 있다. 책숲길도서관에는 도서관이 지혜의 숲이란 뜻이 담겨 있지만, 무학숲도서관에는 이와 함께 숲을 무대로 한 자연친화적 도서관이란 특징이 더해져 있다. 도서관 명칭을 정할 때도 대구경찰청 뒷산인 무학산 일대에 조성된 무학산공원 속에 자리한 도서관이란 특성을 나타내기 위해 숲이란 키워드가 채택됐다. 이 때문에 생태와 환경을 주제로 한 자료를 집중적으로 수집하고, 이와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단계적 일상회복에 들어선 지난 한 주 동안 무학숲도서관이 위치한 무학산공원 일대에서는 ‘2021 무학산 책&숲축제’가 열렸다. 위드 코로나 상황이긴 하지만, 용학도서관과 무학숲도서관 직원들은 축제기간 내내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는데 집중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인원수를 제한한 시민들의 참가신청을 용학도서관 인터넷 홈페이지로 받았으며, 마스크 착용 등 개인방역수칙을 지키도록 안내하고 행사장에 도착한 주민들에게 일일이 발열검사를 했다.

주요 행사를 소개하자면 ‘책&숲체험’이 축제기간 중에 매일 진행됐다. 책퍼포먼스, 책&참나무이야기, 책&나뭇잎이야기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무학산공원에 각각 마련돼 주민들이 책과 숲의 조화를 즐길 수 있게 했다. 뜯어진 그림책을 재활용해 자신만의 팝업북을 만들고, 나뭇잎 탁본으로 에코백을 만들기도 했다. 또한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단위로 도시농업, 곤충, 식물 및 원예, 환경이란 주제의 체험부스가 각각 운영됐다. 모든 주제의 체험은 자연생태계의 중요성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도토리와 나뭇잎, 나뭇가지 등 자연물을 활용해 작품을 만드는 생태공예체험은 마지막날인 툐요일에 진행됐다. 초등학생이 포함된 가족들이 유아숲지도사의 안내에 따라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었다. 이 작품들은 유튜브 용학도서관 채널과 전시를 통해 소개될 예정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우울해진 주민들의 마음을 달래는 공연도 마련됐다. 금요일 저녁에는 ‘젊은 소리패 도화의 판소리 눈대목’이란 이름으로 숲속음악회가 열렸다. 토요일에는 환경보호를 강조하는 인형극과 독서를 권장하는 인형극이 각각 마련돼 어린이들을 즐겁게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책과 숲이 이뤄내는 시너지효과를 기대하면서 준비한 ‘2021 무학산 책&숲축제’는 막을 내렸다.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꿔버리면서 인간에게 환경파괴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체감하게 한 자연의 경고다. 기후위기는 각종 질병, 정신질환, 자살, 범죄, 전쟁, 작황, 아동발달 등 거의 모든 영역의 인간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더 늦기 전에 코로나19와 기후위기는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거대한 인과관계 안에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역설적으로 인간의 욕망이 초래한 자연생태계 파괴의 심각성에 눈뜰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은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재난의 근본적 해결책인 것과 동시에, 시민들의 건강을 지키고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유일한 방법이다. 건강한 도시를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시민의 관심과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용학도서관과 무학숲도서관이 추구하는 지향점도 같은 맥락이다. 이제 코로나19 사태로 지친 주민들이 하루빨리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책과 숲이란 키워드를 더욱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지혜의 숲인 도서관이 책과 숲의 가치를 창출하고 공유하고 확산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