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운전 면허증

발행일 2021-11-03 10:08:27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김준식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누구나 아끼는 자기 물건이 있고, 이것을 재산목록 1호라고 한다.

아내의 재산 목록 1호는 베란다와 거실에 있는 꽃과 나무들이다. 지금은 바빠서 조금 관심 밖이지만 아침저녁으로 끔찍이 챙기면서 행복해 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지만, 한편으로 나도 베란다 꽃 나무의 반쯤의 관심을 받았으면 하는 부러움이 있다.

내가 가장 아끼는 물건은 아파트 밖 복도에 세워져 있는 자전거로 재산 목록 1호이다. 동네 돌아다니는 것이 좋아 하이브리드 자전거를 어린이날 대형할인점에서 세일할 때 구입했는데 정이 많이 들었다. 그 옆에는 아들이 타다가 결혼하면서 버리고 간 로드 자전거(road bike)가 함께 나를 기다린다.

독일 뮌헨에서 1년 간 연수할 때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게 자전거였다. 뮌헨 도시 전체에 자전거 길이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어 무척 편리해 보였고, 도심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숲속으로 멋진 자전거 여행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학생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자전거를 구입할 형편이 못 돼 늘 아쉬운 마음이 있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는 작정하고 자전거를 구입했다.

뮌헨의 자전거길은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인도에 함께 조성돼 있는데, 자전거를 탄 사람과 보행자가 부딪히면 그 잘못은 100% 보행자의 잘못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자전거도로와 붙어 있는 인도에서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조심하지만, 행인들도 자전거를 조심한다.

특이한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들도 자전거에 파란색의 삼각형 깃발을 달고 일반도로와 자전거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다. 독일에서는 자전거 운전 능력 인정을 받으면, 어린이들이 파란색의 깃발을 달고 자전거를 달린다. 네거리가 나오면 자기가 가는 쪽으로 팔을 뻗어 갈 방향을 표시하고, 오른 쪽에서 나오는 자전거에게 양보하는 법을 배우기에 나중에 자라서 자동차를 운전할 때에도, 신호등이 없는 네거리에서 자기보다 오른 쪽 길에 있는 자동차에게 양보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신호등이 없는 네거리에서 꼬리를 물고 차를 들이대는 일은 있을 수 없고, 한 대씩 교행을 한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몸에 배인 규칙을 지키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은 어른이 돼서도 지속된다.

피아제의 유아 인지발달 이론에 따르면 만 2세부터 7세까지를 ‘전조작기’라고 했는데 전조작기의 특징 중 하나로 자아중심성을 꼽았다. 이 시기 아이는 자신과 다른 관점이나 시선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즉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6~10세의 아동은 ‘타율적 도덕성’을 갖는데 이 시기 아이들은 규칙을 복종해야 할 권위적인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결코 변경될 수 없으며 반드시 복종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 시기 아이들에게는 소방차가 출동하면서 교통신호를 무시하는 것이 잘못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 빨리 도착해서 불을 끄지 않으면 안 될 위급한 상황이지만 아이들은 그것을 감안하지 못하고 다만 규칙을 어기면 벌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10세 이후가 되면 ‘자율성 도덕성’으로 하나의 규칙이 어떤 사정에 의해서나 사회구성원의 동의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불을 끄러가는 소방차가 교통신호를 무시하는 것에 대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단계가 된다.

타율적 도덕성을 갖는 시기에 철저한 규칙과 약속에 대해 지킬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며 자전거 운전 면허증도 도덕성 교육의 중요한 일정으로 독일에서는 이해하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 6월부터 자동차운전면허 시험과 같은 ‘자전거 운전능력 인증제’를 도입해 자전거 운전능력 인증을 받으면 공공자전거 ‘따릉이’ 이용 요금을 2년간 할인하기로 했다. 대구에서도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이러한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내가 살고 있는 시지에서 금호강 자전거 전용길로 나서면, 금호강에 의해 습지가 아름답게 형성돼 있고 온갖 습지 식물들과 들꽃들이 수를 놓으면서, 해오라기, 중백로, 왜가리, 오리가족들과 이름을 알 수 없는 노란 이쁜 새 등 저마다 바쁘게 하루의 아침을 시작한다.

풋살장, 족구장, 농구장, 배구장, 크로켓 코스 등 다양한 운동 시설이 있는 팔현마을의 수성 패밀리 파크까지 갔다가 다시 올라와 금호강교의 옛날 다리를 건너서 가창쪽으로 40㎞를 내려가면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에 도착하는데, 금호강 주변의 아름다움을 계절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다. 간혹 부모와 함께 어린이 자전거를 타고 나오는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예뻐 보이고 행복할 수가 없다.

파랑 삼각 깃발을 달고 금호강 자전거길을 가득 채우고 달리는 밝은 아이들의 모습과 그들이 만들어갈, 상대방을 배려하며 사회적 합의를 지켜나가는 도덕성이 높은 세상을 꿈꿔 본다.

김준식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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