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보는 TV 프로그램 중 하나가 EBS의 ‘지식채널e’이다. 주로 자투리 시간에 인터넷을 통해 다시보기로 시청하는 편이다. 5분 내외의 짧은 코너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는 내용들이어서 보고 나서도 여운이 꽤 남는 프로그램이다.

며칠 전에 본 것 중 하나가 ‘세종대왕 최대의 적은?’이란 내용이었다. 미국 대통령과 세종대왕의 탕평인사를 다룬 짧은 코너였다.

먼저 미국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이다. 남북전쟁을 통해 노예 해방을 이룬 미국의 16대 대통령 애브라함 링컨과 미국 제44대 대통령이자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의 공통점은 뭘까? 정답은 적을 곁에 두었다는 것이다.

먼저 링컨 전 대통령 이야기를 해보자. 링컨의 리더십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탕평’이다. 노예제도의 존폐를 둘러싸고 미국의 남북이 분열로 치달았을 때다. 링컨은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자신의 정치인생 최대의 적이자 라이벌이었던 윌리엄 수어드를 국무장관으로 임명했다. 민주당원이었던 에드윈 스탠턴을 국방장관에 앉히기도 했다. 그는 링컨을 ‘팔 긴 원숭이’라고 모욕했던 인물이었다.

2008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오바마의 라이벌이었다. 오바마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기용했을 뿐 아니라 이전 부시 정부의 국방장관 게이츠를 유임시키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탕평 인사는 있었다. 세종대왕은 장인어른을 죽이는데 앞장 선 원수였던 박은을 집현전 총책임자로 임명했다. 또 세종이 세자가 되는 것을 결사반대한 황희를 조선시대 최고 중앙관직인 영의정에 임명하기도 했다. 숙적으로 여겼던 사람들을 대거 주요관직에 발탁해 정책의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실제 황희는 19년을 재임하며 세종대왕의 혁신적 리더십에 맞춰 국가사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세종대왕 당시 주목을 받은 인물은 따로 있었다. 태조와 정종, 태종, 세종 등 네 임금을 섬기며 세종 때 예조판서와 이조판서, 좌의정을 지낸 허조(1369~1439)이다. 왕에 대한 직언으로 유명했다. 어떤 사안이든 최악의 가능성을 상정하고 문제점을 따지고, 해결방법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세종이 추진하려는 일마다 반대만 고집했다. 세종을 괴롭게 한 최악의 신하였다. 이는 세종실록에도 기록돼 전해진다. “허조만 혼자서 다른 의견을 냈다”거나 “허조는 정말 고집불통이다”고 전해온다.

스스럼없이 왕에게 직언을 하고 반대의견을 말해도 허조는 유배를 가거나 관직에서 쫓겨난 적이 없었다. 직언을 하는 신하를 곁에 두는 이런 혜안이 세종을 성공한 왕으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링컨과 오바마 미국대통령, 세종대왕의 성공은 어떻게 보면 정치인생 최대의 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물들을 곁에 두면서 그들의 ‘말할 용기’를 지켜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예나 지금이나, 외국이나 우리나라나 간에 한 나라를 운영하는 원리는 같다. 단지, 제도가 다르고 체제가 다르고, 시스템이 다를 뿐이다.

지금 여야가 내년 대통령선거 후보선정으로 부산하다. 여당인 민주당은 경선 후유증을 털어낼 ‘원팀 선대위’를 구성했고 야당인 국민의힘도 곧 대선후보를 선출한다. 어떻게 보면 이번 대선은 여야를 막론하고 경선 후유증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 어빙 재니스 전 예일대 경영대학 교수의 집단사고에 대한 경고를 귀담아 들을 만하다. 그는 결속력이 강한 집단일수록 의견일치를 이루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점차 다른 의견을 무시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배재한 채 쉽게 의사결정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이게 ‘집단사고’의 무서움이다. 세종대왕이 ‘고집불통’이라며 화를 내면서도 허조의 말을 경청한 것은 그를 통해 집단사고를 경계하고자 했던 것임을 명심할 일이다.

지금은 비판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허조와 같은 사람이 없다. 허조와 같은 반대 의견을 받아들이는 장치도 없다. 용기란 일어나서 말할 때 뿐 아니라 앉아서 듣고 있을 때도 필요하다고 했다(윈스턴 처칠). 허조의 ‘말할 용기’와 세종의 ‘듣는 용기’가 새삼 돋보이는 요즘이다.

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