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리화」 (그루, 2021)
온통 디지털 천지다. 문제를 대부분 손안에서 다 해결하고 있다. 카톡이 끊임없이 울린다. 생면부지의 네티즌과 연결된 메시지와 메일이 쉴 새 없이 분주하다. 물밀듯 밀려오는 정보를 일일이 확인하자면 하루 스물네 시간이 모자란다. 대충 건성으로 확인하고 정리해도 감당이 불감당이다. 페이크까지 걸러낼 여력은 없다. 눈만 뜨면 스마트폰을 열고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본다. 그 속에서 의문을 해결하고 답을 구하며 친구를 사귄다. 거기에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남의 생각을 살펴본다.
기계화나 자동화로 기세를 떨쳤던 산업사회는 고개를 숙이고 인공지능과 인터넷으로 무장한 정보사회가 득세하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이란 이름으로 긴장감을 높이고 새로운 변화에 대한 이니셔티브를 선점하려고 눈을 부릅뜬 채 안간힘을 쓴다. 지속가능한 우위를 지켜가려면 시대 흐름을 신속히 파악하고 그 경향성을 민감하게 알아차려서 적시에 수용하는 개방성이 선행요건이다. 남보다 앞서가기 위한 처절한 경쟁이 눈물겹다.
이젠 아예 디지털 세상으로 들어가 살려고 야단법석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가상현실, 증강현실에 익숙해지자 가상화폐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다. 메타버스라는 신조어를 모르면 원시인 취급을 받을 판이다. 아날로그 현실을 디지털 가상세계로 남김없이 끌고 들어갈 기세다. 현실은 귀찮고 성가신 천덕꾸러기가 됐다. 이쯤 되면 피로감이 없을 수 없다. 설상가상 아날로그 세상에 길들여진 꼰대가 설 땅은 없다.
참새도 죽을 땐 짹 하고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거리는 법이다. 아날로그 인간도 나름대로 살 길을 찾는다.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 산속으로 떠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거기엔 삼라만상이 모두 다 아날로그다. 그것만으로 위로가 된다. 맑은 공기와 햇볕, 솔 향기와 개울물 소리 그리고 새소리가 디지털 중독을 말끔하게 씻어낸다. 빠르게 돌아가는 디지털 세상에서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왕따 당하던 설움이 단박에 날아간다. 자유롭고 안락한 대자연속에서 모태의 행복감을 느낀다.
급변하고 있는 현재는 불확실하고 미래는 더더욱 불투명하다. 삶은 불안의 연속이다. You Only Live Once. 인생은 단 한 번뿐인데 위험부담을 감수하긴 싫다. 확실할 때 최대한 즐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과 현재의 삶을 중시하는 풍조가 대세다. 삶의 질을 당장 높여줄 수 있는 취미생활 등에 우선적으로 돈을 쓰는 극단적인 현재중심주의다. 미래의 희망을 보여주지 못한 아픔의 그림자다. 그렇다. ‘Log off’가 필요한 때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