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사전적 뜻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다. ‘다스림’이란 ‘다 살림’이란 뜻의 아름답고 속 깊은 우리말이다. 그러므로 다스림의 정치란 상대와 대중을 권세로 핍박하고 눌러 조종하고 관리한다는 치졸한 의미가 결코 아니다. 동지와 협력하거나 상대와 경쟁할 때나 결국은 모두를 다 살리기 위한 생명의 인자함과 덕망이 정치에 온전히 깃들어 있어야 한다. 발이 미끄러졌다고 손이 발을 칠 수 있는가? 손이 잘 못 했다고 발이 손을 공격 할 수 있는가? 행정은 국민을 위한 정책을 바르게 실현하고, 국회는 법을 공평하게 제정하고, 사법부는 법을 엄정하게 집행해야함은 모두 다 아는 민주주의의 상식이다. 지금 그토록 당연한 상식이 국민들의 머리위로 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어리석지 않다. 그러나 지도층들은 언제부터인지 ‘화합과 상생’의 노력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손쉬운 ‘국민 갈라치기’ 정략에 몰두했다. 그러자 사법, 행정, 의회, 언론의 상호 견제의 기능은 흩어지고 영역은 사라졌다. 대다수의 지식인들도 눈치를 보는 와중에 이권 카르텔 무리의 성행으로 나라는 그야말로 ‘부패완판’의 난장판이 됐다. 중앙과 지방의 요직을 꿰찬 내 편은 무능과 부정에 상관없이 무조건 비호하며 눙치고 있다. 윗사람이 전문 능력이 없으니 아래 실무자는 얼마든지 전용실무지식으로 윗사람을 속이거나 담합해 사리사욕을 채울 수 있다. 얼마 전 LH 사태가 바로 그렇다.
반대로 탐욕에 가득 찬, 소위 설계를 꾸미는 기관장에 의해 강직하고 청렴한 부하 인재들은 결국 자리를 떠야 한다. 최근의 아수라 같은 ‘화천대유’ 사건들이 또한 그와 같다. 그들은 약탈하듯 순식간에 벌어드린 엄청난 뭉칫돈으로 국회의원과 지방의회, 언론, 사법부까지 좀 먹어 들어갔다.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기에 ‘하느님 다음’이라는 대법관들마저 그들의 모략과 돈의 위력에 맥없이 무너져 버렸다. 나라발전의 두 축인 ‘청렴’과 ‘열정’이란 동력이 허망하게 꺼져가고 있다. 일이 이에 이르니 장삼이사(張三李四)의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며 사방에서 울부짖고 있다.
고려 말, 지도층의 사치스런 향락과 가렴주구로 온 나라가 부패해 멸망에 이르게 됐다. 고위 관리들이자 지식인들인 이색, 정도전, 정몽주 등은 자신들의 나라를 ‘국지불국(國之不國)’이라 자칭했다. ‘나라이되 나라가 아니다’라는 말이니 지금 말로 ‘이게 나라냐!’는 피맺힌 외침이 아니고 무엇이랴. 1574년 우부승지가 된 율곡은 선조에게 ‘만언봉사’를 올려 직언을 한다. “조선은 하루가 다르게 붕괴돼가는 한 채의 집입니다. 지금 나라가, 나라가 아닙니다(基國非基國).” 기둥을 바꾸면 서까래가 내려앉고, 지붕을 고치면 벽이 무너져 내리니 조선은 이미 어떤 대목이 와도 ‘손을 댈 수 없는 집’이라고 절규했다. 지엄한 왕권아래에서 그야말로 목숨을 담보로 한 공직자의 양심적 직설이다.
이제부터는 대통령, 도지사, 시장, 시의원, 모든 장(長)들을 정말, 정말, 정말이지 바르게 뽑아야만 한다. 그리해 우리도 한번 마음껏 박수치며 널리 드러내자. 나와 우리와 지구촌 모두의 자랑인 대한민국!
“그래, 이게 나라이지!”
장영주 국학원 상임고문·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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