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절여진 살미면 문강배추 오늘 도착/약속한 딸 며느리 내일은 다 모인다/어머니 신난 발걸음 양념준비 바쁘다//오남매 다 모여 오순도순 깨 볶는 날/어쩌다 오지 못한 한 사람 섭섭하지만/오늘은 우리 어머니 자식사랑 치대는 날

「찔레꽃 엄마 향」(2021, 만인사)

류금자 시인은 대구 비산동 출생으로 2015년 시조시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고, 시조집으로 ‘텃밭’과 ‘찔레꽃 엄마 향’이 있다.

그의 시조는 솔직담백한 정서 표출이 눈길을 끈다. 사람살이에서 비롯된 자각과 성찰을 통해 보다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노래다. 때로 존재의 근원을 주시하는 눈길도 보이고, 인간관계 속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가지 시적 정황을 시조로 육화하기 위해 힘쓴다. 이처럼 그의 시조는 진중한 경륜에서 얻은 따사로운 인간애의 발현이요, 넌출거리는 서정의 세계여서 행복하게 읽히는 특장을 지니고 있다. 그는 오랫동안 시를 쓰다가 우연히 시조의 가치를 알게 돼 시조로 등단한 이후 연륜의 깊이가 묻어나는 시조 창작에 힘쓰고 있는 중이다.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아직도 동심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모든 작품들이 진솔하다. 꾸밈이 없는 언어 운용으로 감동을 선사한다.

‘김장’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잘 절여진 살미면 문강배추 오늘 도착 약속한 딸 며느리 내일은 다 모인다, 라면서 어머니 신난 발걸음 양념준비 바쁜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오남매 다 모여 오순도순 깨 볶는 날 어쩌다 오지 못한 한 사람 섭섭하지만 오늘은 우리 어머니 자식사랑 치대는 날이어서 피곤한 줄도 모른다. ‘김장’은 평범한 일상을 노래한 작품으로 간주할 수도 있겠지만, 둘째 수에서 우리 어머니 자식사랑 치대는 날, 이라는 빛나는 결구로 말미암아 시적 승화가 이뤄져서 명편이 되고 있다. 치댄다는 말이 자식사랑과 결합돼 긴 울림을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단시조 ‘소낙비’는 애절하다. 내 한 천년 후에 구름으로 떠다니다 상사화 애통한 임 고비사막 횡단할 때 별안간 소낙비 돼 흠뻑 적셔 주겠다는 염원을 담고 있다. 천년은 길이이기도 하지만 깊이이기도 하다. 천년을 살지 못하는 인간에게 천년은 영원이나 다름이 없다. 천년 후 구름이 된 화자는 임이 고비사막을 횡단할 때 한 줄기 소낙비가 돼 내리겠다고 한다. 지극한 사랑노래가 아닐 수 없다. 너무나도 간절하기 때문에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어느 날의 너’는 고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방안을 둘러보니 바람 든 사월 무가 보인다고 한다. 화자의 다른 모습 같다. 무는 바람이 들면 버려진다. 그래서 화자는 더는 쓸모없어 먼 하늘을 쳐다본다. 그때 고적함을 더하는 것이 있다. 뒤란에 걸린 시래기 찬바람에 서걱서걱 소리 내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의 너’는 살면서 누구나 이와 비슷한 정황에 놓여 적막해질 수 있음을 은연중 말하고 있다.

또 다른 단시조 ‘흰죽 한 그릇’은 벼랑 끝 저 벼랑 끝 천길 만길 벼랑 끝에서 보듯 위태로운 정황이 가감 없이 표출되고 있다. 한 장을 4행으로 끊어서 표기하고 있는데서 급박한 심경이 그대로 드러난다. 무려 끝이 세 번이나 쓰인 것도 그렇다. 마침내 녹아 빠진 애간장 더 녹을 게 없게 됐다. 그래서 한 그릇 수만 냥짜리 흰죽이라고 죽 한 그릇의 소중함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화자에게는 그 죽 한 그릇이 곧 목숨이었기에 눈길 머문 이 아침이라고 끝을 맺었을 것이다. 이보다 더 절절할 수가 있으랴?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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