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티재 꽃피다」(2021, 동학사)
김덕현 시인은 경북 군위 출생으로 1998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했다. 최근 첫 시조집 ‘한티재, 꽃 피다’를 펴냈다. 그는 이번 시조집에서 ‘동국여지승람’과 같은 시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은 각 도의 지리, 풍속, 인물 등을 자세하게 기록한 우리나라의 지리서다. 그는 축소해서 한티재를 중심으로 한 고향의 풍광과 정서와 스토리를 엮고 있다. 말하자면 특별한 이야기다. 이 특별한 이야기가 개인적인 회고에 머물지 않고, 정서적 파장을 일으키며 가슴으로 다가온다. 온고지신이다.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해 새것을 알게 되는 계기다. 그것은 곧 미래를 다르게 열 수 있는 안목을 길러줄 것이다. 또한 새로운 힘의 충전이기도 하다.
우리는 성장해온 배경과 무관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시인의 고향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다. 한시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 깊은 울림을 가진 정서는 곧 그리움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울컥하게 하는 향수다. 그래서 그의 시조 세계를 향수에 근원을 둔 향토적 상상력의 보고, 라고 명명한다. 향토적 상상력에 기원을 둔 그의 시 세계는 그 누가 읽어도 공감할 것이다. ‘보고’라고 일컫게 된 것은 정경과 내면을 감칠맛 나게 버무리는 그의 기량 때문이다. 살갑고 다정하며, 열정적인 그의 언어는 내밀한 정서와 잘 결합돼 독자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이끈다. 또한 그의 품성이 작품 곳곳에 배어들어 훈향 높은 미학적 직조를 이루는데 기여하면서 꽃향기와 같은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점에서 ‘한티재, 꽃 피다’는 소중한 시조집이다. 그나 그의 가족에게만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개성적인 호흡과 정서와 사상과 감정이 오롯이 담겨 큰 파장을 일으키는 진실하고 아름다운 책이 될 것이다. 자신을 낳고 길러준, 오늘이 있기까지 살갑게 붙들어준 고향에게 바치는 소담한 헌정시집이기도 하다.
‘그날 밤 나는’은 누에치기 농사에 대한 기억을 더듬고 있다. 방 아랫목 보금자리 생명의 씨, 누에 알 하나 꿈에서 깨자마자, 봄비처럼 사각사각 가만히, 살피어 가며 뽕잎 갉는 이른 아침, 이라는 첫수는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게 할 만큼 세밀하고도 그윽한 묘사 일색이다. 섬세한 감각으로 다정다감한 분위기를 연출한 다음 둘째 수에서 해거름 창문 너머 산 뽕잎이 짙은 날 이제는 승화의 시간, 이것은 나의 숙명이라면서 네 번째 꿈에서 나온 누에 다짐을 들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셋째 수에서 청솔가지 꺾어 세운 제단 위에 몸을 뉘어 욕망의 실을 뱉어 고치솜을 지을 때 화자는 베갯잇, 씨앗을 안고 그렁그렁 뒤척였던 일을 상기한다. 이처럼 누에치기를 통해 승화의 시간을 바라보는 일은 값지다. 삶이 한 단계 더 성숙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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