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 정명희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연분홍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린다. 살살이 꽃이라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가로수 은행잎이 노랗게 익어가는 계절,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꽃들이 유난히 정겹게 다가온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듣고 있으면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찡해지는 어느 가수의 잊혀진 계절이 언제나 생각나는 10월, 그 마지막 밤도 저물었다. 언제나 기억해야만 할 것 같은 순간, 영원히 보내고 싶지 않은 가을이 저물어 간다.

바야흐로 ‘위드 코로나’ 일상으로의 복귀를 꿈꾼다. 주말을 맞아 오랜만에 온라인이 아닌 대면 학술대회에 참석했다. 내용이 무엇이 됐든 얼굴 마주하고 만날 수 있는 장이 마련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두가 기꺼이 달려왔다. 꽤 성황을 이뤘다. 마스크하고 음식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눈으로 인사하고 서로의 근황을 물어보면서 반가워했다. 대부분 2차 접종을 마친 분들이지만, 델타 변이가 유행하는 상황이라 서로 거리를 유지하며 조심했다. 주제는 당연히 코로나19가 포함됐다. 그동안 우리가 맞이하게 됐던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자세하게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저 코로나바이러스도 언젠가는 B형간염처럼 자유롭고 손쉽게 항체를 검사해 면역력이 잘 형성되지 않았으면 다시 재접종하는 단계에 이르지 않을까 싶다. 신종인플루엔자가 처음 발생 됐을 때 방호복을 입고서 검체를 채취하며 두려움에 떨었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러던 것이 이젠 해마다 독감 예방 접종하는 것으로써 더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병이 되지 않았는가. 코로나19, 어서 빨리 정복해 일상생활을 마음껏 하면서 보고 싶은 곳 어서 가보고,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모여서 먹을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린다. 구순을 바라보는 원로 선배님이 간절한 목소리로 강조하신다. “이 코로나 어서 빨리 물러갔으면 소원이 없겠어, 정말 지긋지긋해, 코로나 예방 접종하느라 코를 박고 있다 보니 어느새 시월의 마지막 밤 주제가가 흐르고 있더라”고. 가을이 언제 지나가는지, 시월의 마지막이 언제 됐는지, 돌아볼 시간도 없이 시간이 휙 가버렸다고 하신다. 그래도 해마다 이맘때는 잊지 않고 들려오는 어느 가수의 노랫가락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잊혀진 계절을 불러 해마다 그것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는 가수, 만약에 그가 그 노래를 부르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언젠가 라디오 방송에서 어느 작가가 물으니 그는 단호히 답했다. “만약에~는 없다.” 처음 그 노래는 다른 가수가 부르기로 돼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그가 불렀고. 신인이었던 그의 덜 세련된 풋풋한 목소리가 청중에게 호소력 있게 젖어 들어 공전의 히트를 하게 됐다고. 자고 난 이튿날 아침에 일약 스타덤에 올라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러니 어느 순간, 어떠한 장소에서라도 아주 작고 사소한 기회라도 찾아오면 그것을 반갑게 맞이해 최선을 다해 내 것으로 만들어보려 노력한다면 행운의 여신은 반드시 노력하는 자를 향해 밝은 미소를 짓게 되지 않으랴.

마스크를 쓰고 생활한 지도 해가 바뀌고 다시 한 해가 바뀌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처음부터 마스크 쓴 모습으로 인사 나누게 되는 사람들, 처음 본 그 사람들의 민얼굴을 알지 못한다. 만약에, 코로나가 종결돼 마스크를 벗게 되는 날 제대로 사람들의 인상을 알아차릴 수는 있을까 궁금해진다. 내시경 검사를 많이 하던 동료는 늘 소 수술실에서 지냈다. 내시경 검사를 할 때마다 도와주던 간호부 식구들과 회식을 하는 자리에서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있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눈치 빠른 간호사가 마스크를 꺼내어 입을 가리고는 이제야 알아보겠느냐는 표정을 지어서 한참 웃었다고 전한다. 마스크를 쓴 모습과 벗은 모습이 정말 판이한 인상을 주게 된다면 그때는 비상용 마스크를 가지고 다니면서 만약에 못 알아보는 경우, 식별용으로라도 써서 구별하게 해 줘야 하지 않을까? 우스꽝스러운 상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웃어보고 싶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를 함께 보내는 우리 모두에게 큰소리로 외치고 싶다. “웃자~! 힘들 때 울면 삼류, 힘들 때 참으면 이류, 힘들 때 웃으면 일류”라고 하지 않은가.

가을이 깊어간다. 머지않아 눈 내리는 겨울이 올 것 같다, 맑은 하늘 아래 정다운 이들과 가을 들판을 거닐어보자. 오늘 잊지 못할 명언은 바로 ‘가장 좋은 의사 6’이다. 첫째, 신선한 공기/ 둘째, 운동/ 셋째, 물/ 넷째, 휴식/ 다섯째, 좋은 음식/ 여섯째, 햇볕/이라지 않은가. 걷기 좋은 가을날, 물 한 병 챙겨 들고 맑은 햇살 비치는 가을 길을 콧노래 흥얼거리며 마음껏 거닐어보자, 즐겁고 행복한 순간, 잊지 못할 얼굴을 떠올리며 웃자, 웃어보자, 마음껏,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정명희 정명희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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