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시」 (그루, 2020)
살다 보면 어두운 길을 헤맬 때가 있다. 주위엔 사람도 없고 한치 앞도 볼 수 없다. 빛이 찾아와 길을 밝혀줄 것 같지 않고 함께 걸어가며 옆에서 말동무 해줄 사람도 나타날 것 같지 않다. 살을 에는 바람이 부는 겨울 숲속, 옷을 벗은 나무는 앙상한 갈비뼈를 드러내고 하늘엔 하얀 눈이 흩날린다. 해는 서산에 걸려 붉은 노을이 붉게 물들고 도시의 불빛이 어둠을 뚫고 나와 그 모습을 숨긴다. 고독과 절망만이 좁은 공간을 맴돌 뿐.
아무리 가슴을 어루만지면서 마음을 다잡아 봐도 암울한 질곡을 벗어날 수 없다. 좌절의 덫을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칠수록 운명은 더욱더 발목을 죈다. 슬픔은 깊어 더 이상 슬프지 않고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아 적막하다. 무릎 꿇고 운다고 될 일도 아니다. 삶의 짐을 내려놓고 죽음의 눈을 응시하는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다.
문득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숲속에도, 도시의 불빛 속에도, 저녁노을 속에도, 엄마의 모습이 환영처럼 비친다. 부모가 준 목숨, 나만의 것이 아니다. 그땐 습관처럼 시집을 펴들고 애송시를 낭독한다. 이런 짓거리를 왜 하지,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에라, 시에라도 미쳐 가볼 데까지 가보자.’ 시는 피아노의 선율처럼 유영하며 고독과 절망을 녹여낸다. 그제야 바닥의 안정에 힘입어 평온이 찾아온다. 기운이 소록소록 솟아나고 삶이 생기를 띠며 기지개를 켠다.
“저 창밖 빈 겨울 나무처럼, 추운 모퉁이 한켠에 비켜서 있다가, 봄이 오면 제일 먼저 뛰어나가 푸른 잎사귀의 물관을 타고 올라서, 하늘 위 흐르는 흰 구름의 가슴을 뭉클 만져 보면 된다.” 시 나무를 타고 구름 위로 올라 이백과 마주앉아서 술잔을 기울일 만한 경지다. 이만하면 하산해도 좋을 듯하다.
오철환(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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