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애 시인

며칠 전 이른 아침, 집 뒤 과수원으로 개를 풀어놓자 개는 쏜살같이 무언가를 쫓아가더니 두어 시간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과수원 위로는 숲이 울창한 산인데 아마도 개는 그 산에 들어가서 안 나오는 모양이었다. 과수원에 있던 검은 짐승을 쫓아갔다니 개가 그 짐승을 잡거나 짐승이 개를 잡거나 양단간에 결판이 날 모양인데 우리는 돌아오지 않는 개를 찾아 목이 쉬어라 부르는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들어가기에 숲은 너무나 우거져 있었고, 햇볕이 들지 않을 만큼 컴컴했다.

두어 시간 후, 개는 온몸에 숲의 흔적을 묻힌 채 지쳐서 돌아왔지만 쫓고 쫓기던 그 추격전의 결말은 알 수가 없었다.

어젯밤, 해가 저물자 곡란골에는 난데없는 스릴러 스토리가 펼쳐졌다. 이웃과 몇 마리의 통닭을 놓고 가벼운 맥주를 한 잔 하는 자리였는데 아저씨 한 분이 산중에 있는 저수지에서 있었던 한밤의 스릴 넘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 아홉시쯤 돼서 메기도 얼추 몇 마리 잡았고 해서 집에 갈까 생각 중이었는데 숲에서 흙이 훅 날아 오는기라. 라이트를 비춰보니 숲에서 새파랗게 불을 켠 눈 두 개가 보이는기라. 돌을 던져서 쫓아내고 다시 메기 낚시에 정신이 없는데 한참 있으니 또 흙이 후두둑 날아오는기라. 다시 라이트를 비춰보니 이번에는 불이 새파랗게 켜진 눈이 네 개인기라. 그 놈이 다른 놈을 데리고 온 거지. 그래도 내가 겁은 좀 없는 사람인데 와락 무섭데. 저수지에 펼쳐놓은 낚싯대가 한 여덟 개쯤 됐는데 그걸 어떻게 챙겼는지 몰라. 저쪽에 있는 낚싯대를 가져오는데 소름이 쫙 끼치더라고. 정신없이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오다가 생각해 보니 잡아놓은 메기를 안 가져왔는기라. 근데 다시 돌아갈 수가 있어야지. 그 놈이 다른 놈을 데리고 올 줄은 몰랐지. 갔는 줄 알았제. 할 수 없이 잡은 메기는 그대로 두고 집에 돌아왔는데 그 후로는 다시는 밤에 메기 잡으러 안 갔지. 그 놈이 납딱바리라 카는 놈 아이가. 두서너 놈 오면 정신을 홀린다고. 옛날에는 그 놈한테 홀려서 죽은 사람도 여럿 되는기라.”

오! 그날 우리 개가 번개같이 따라간 검은 짐승이 그럼 납딱바리라는 그 놈인가 하는데 다른 아저씨의 말이 이어졌다. “오소리이거나 너구리일거야.” 납딱바리는 딱 고양이처럼 생긴 놈인데 이 모든 짐승들 중에서 최고 영리한 놈이라는 것이다. “그기 검지는 않지.”

“그 스라소니라는 놈도 안 있나. 무섭기는 그놈이 제일 무서운데 그 놈은 밭으로는 잘 안 내려오지. 저 앞산 골짜기에 있는 산밭에 가면 그 놈이 한 번씩 보이거든.”

아니, 스라소니! 멸종된 줄 알았던 그 놈들이 아직도 이 곡란골을 무대로 살고 있다는 말인데 이 무슨 납량특집극이란 말인가. 그럼 바로 우리 집 위의 밭에 내려온 짐승이 오소리이거나 살쾡이거나 너구리, 또는 아기 정도는 거뜬히 잡아먹는다는 스라소니이거나 그런 놈들 중의 한 놈이란 말인데, 알고 보면 이 모든 짐승들이 밤이면 집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단 말이 아닌가.

내가 어릴 적에 자타가 인정하는 이야기꾼이셨던 아버지는 저녁마다 동네 아이들을 모아놓고 온갖 산짐승들의 활약상을 들려주면서 방안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곤 했는데 그때 자주 등장하던 짐승이 바로 이 납딱바리였다. 그때 나는 이 짐승이 네모반듯하고 납작한 그런 모양으로 상상했는데 이번에 알아보니 살쾡이라는 것이다. 이 대명천지에 납딱바리라는 수십 년 전의 짐승이 다시 호명되고 그 익숙한 이름에 유아기부터의 모든 추억이 일시에 떠오르는 것을 보면 나는 이미 먼 옛날의 인간이고, 내 정신의 근원은 좁은 오솔길을 걸어가던 것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때 길들은 넓지 않았고, 어두워지면 산짐승들이 눈에 불을 켜고 이 산 저 산을 쏘다녔고, 나는 당연한 듯이 그것들을 지켜 보았다. 비라도 내리는 밤이면 멀리 공동묘지에서 보이던 불빛들도 아직 내 가슴엔 아련히 켜져 있다.

날이 밝은 아침에 어젯밤에 들은 이야기가 떠올라 저 캄캄한 숲을 올려다보니 숲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이 곳은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곳인지도 모른다. 숲에는 캄캄하고 형체가 불투명한 원초적인 영혼들이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가끔 인간에게 말을 걸기 위해 나타나면 인간은 그들과 나누던 영적인 대화를 상실해 버려서 다만 무서움에 몸을 떠는 것이다.

천영애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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