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 현장을 가다 (97) 경주양북달토마토농장

발행일 2021-10-19 18:43:5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마을 전체를 농촌체험형 마을로 만들고 싶은 꿈

우리 민족의 정체성인 쌀을 지키고자 벼농사 나서

밥맛이 좋은 쌀은 자연과 인간이 만드는 합작품

부숙된 우분으로 땅심 돋우고 적기영농으로 최고의 쌀 생산

김학문 대표가 잘 익은 벼를 수확해 보여주고 있다.
어릴 적 생일날에 받았던 고봉밥이 평생 잊을 수 없는 최고의 밥상이었거나, 고기를 배부르게 먹고도 밥은 꼭 먹어야 한다거나, ‘밥심’으로 버틴다는 등의 말을 한다면 그는 천생 한국인이다.

쌀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하얀 쌀밥은 배보다 마음을 먼저 부르게 하는 먹거리다.

지금은 흔하지만 예전에는 귀하고도 귀한 존재였다.

누구나 배가 터지도록 한번 먹어 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쌀을 주식으로 삼았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쌀에 대한 생각은 변함이 없다.

이제는 양보다 맛을 먼저 따진다.

사람마다 입맛은 다르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쌀은 우리 땅에서 우리 농민이 키운 신토불이 우리 쌀이다.

쌀은 영원한 소울푸드(soul food)이고, 우리의 정체성이라는 청년농부를 만났다.

경주에서 벼와 우리밀을 재배하는 ‘경주양북달토마토농장’의 김학문(43) 대표다. 이곳에서는 아열대 작물인 백향과(패션후르트)도 재배한다.

김 대표는 벼 3만3천㎡와 우리밀 2천300㎡, 백향과 1천300㎡를 재배해 연간 6천여만 원의 매출을 올린다.

아내인 윤순옥(39) 공동대표는 마을 한 복판에서 농촌체험형카페인 ‘경주청년팜’을 운영하고 있다.

김학문 대표가 아내인 윤순옥 공동대표와 함께 경주청년팜 카페에서 우리밀로 만든 빵을 보여주고 있다
◆ 귀향과 귀농

김 대표는 경주에서 태어나고 경주에서 자랐다.

직장생활도 경주에서 했다. 인쇄업과 건축업에 종사했었다.

그러다가 스물여덟의 나이에 부모님 곁으로 돌아왔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귀농을 하겠다니 부모님들의 반대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반대와 고집 사이에서 귀향이라는 절충점을 찾았다. 고향에 들어오되 직장을 계속 다니면서 농사일을 하는 것이었다.

첫 시작은 개구리 양식이었다. 역시 주변의 모든 사람이 ‘안 되는 사업이다’고 말렸다.

김 대표는 또다시 고집을 꺾지 않았다.

반려동물 사육 인구가 늘어나고 있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특히 파충류의 먹이인 개구리는 공급보다 수요가 많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을 높게 봤다. 결과는 실패였다. 사육은 성공했으나 판매를 하지 못한 것이다.

판매를 하지 못하는 개구리는 쓸모가 없는 애물단지일 뿐이었다.

판매를 보장한다고 큰소리치던 종묘업자는 핑계만 늘어놓았다. 그 동안 모았던 돈과 희망이 한꺼번에 날아갔다.

잘 익어가는 벼.
◆왜 쌀농사를?

2011년 농사 기술이 어느 정도 쌓였다는 생각에 직장을 그만 두고 본격적으로 농업에 뛰어들었다. 토마토와 벼를 재배했다.

2019년까지 토마토를 주 작물로 재배했으나 이제는 벼 재배로 전환했다.

벼는 소득은 낮지만 장점도 많기 때문이다.

가장 큰 장점은 모든 농작업이 기계화화 됨에 따라 벼농사가 훨씬 쉬워졌다는 것.

웬만한 규모의 벼농사는 혼자서 가능하다. 김 대표는 현재 3만3천㎡ 규모의 농장을 운영하지만 혼자서 일한다.

다만 수확기에는 아내가 트럭을 운전하면서 수확한 벼를 운반한다.

다른 작물과 달리 농번기와 농한기가 명확하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농번기인 모내기와 수확기를 제외하고는 바쁜 일도 중노동도 없다.

물 관리와 병해충 방제작업 정도만 하면 된다.

최근에는 지방자치단체가 드론을 활용한 공동방제작업을 지원하기 때문에 방제작업도 수월하다. 여유 시간에는 다른 일도 할 수 있다.

다른 농가의 위탁 농작업을 통해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농촌의 고령화로 은퇴농들이 늘어나면서 위탁 농작업도 늘어나고 임차농지를 구하기 쉬워 점진적으로 규모를 늘려 나갈 수도 있다.

이런 장점들과 함께 우리의 영원한 먹거리인 쌀을 지킨다는 사명감과 자부심도 벼농사를 선택한 이유다.

타 작물 대비 소득율이 낮다는 단점은 재배면적 확대를 통한 규모의 경제화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김 대표의 생각이다.

경주청년팜 카페에서 우리밀로 만든 비건 빵.
◆고품질 쌀은 자연과의 합작품

“밥맛이 좋은 쌀은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라고 김 대표는 말한다.

경주지역은 맥반석지대로 토양에 각종 미네랄 성분이 풍부하다.

동해에서 불어오는 해풍과 풍부한 일조량, 토함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어우러져 벼 재배에 최적지로 꼽힌다.

이 같은 자연환경에 농부들의 세심한 손길이 보태져 좋은 쌀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가 벼 재배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적기영농이다. 벼의 적산온도가 2천500℃로 높은 점을 감안해 5월 중순에 모내기를 한다.

충분한 일조량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수확은 서리가 내리기 전인 10월 중순에 마친다.

서리가 내리기 전에 수확하는 것은 미질을 좋게 하기 위함이다.

수확 전에 서리를 맞으면 미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수확한 벼는 건조 후에 저온창고에 보관한다.

수확량의 80%는 추곡수매용으로 출하하고 나머지는 자가 도정해 직거래로 판매한다. 주로 식당과 일요장터를 통해 단골들에게 판매한다. 당일도정 당일판매를 하기 때문에 신선도가 유지되고, 밥맛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땅심을 높이기 위해 매년 좋은 퇴비를 뿌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한우를 사육하는 동생의 목장에서 우분을 가져와 미강(쌀겨)과 미생물을 혼합해 충분히 부숙을 시킨다.

6개월에 걸쳐 4차례 뒤집기를 하고 밀봉해 부숙을 시킨다. 그는 ‘경주의 좋은 땅과 물, 바람, 햇볕은 자연의 몫이고, 물관리와 병해충 방제 등 재배관리는 인간의 몫’이라는 낭만적인 철학을 갖고 있다.

경주청년팜에서 만드는 백향과(패션푸르트) 수제청.
◆동네뷰가 있는 체험형 카페

아내인 윤순옥 공동대표는 시골마을 한복판에서 경주청년팜이라는 농촌체험형 카페를 운영한다.

얼핏 보면 ‘이런 곳에도 카페가 있나?’라고 할 만한 곳이다.

윤 대표는 감포에 있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생활복지사로 일했었다.

어린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먹거리와 소통의 중요성을 알았단다.

지역의 농산물로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고, 소통의 공간을 만든다는 생각에서 체험형 카페를 열었다. 두 가지 특징을 가진 카페다.

꾸미지 않은 ‘동네뷰’가 있고 지역농산물로 수제 먹거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다만 커피나 유기농 원당은 예외다.

카페 창문을 통해 볼 수 있는 동네뷰는 화려한 모습은 아니다. 순수한 농촌마을의 본모습 그대로다.

그림 같은 예쁜 집이 아니라 투박한 블록담장과 빛바랜 지붕이 보인다.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와 담장을 타고 오르는 호박도 보인다.

구슬땀을 흘리면서 참깨를 수확하는 농부의 눈치를 보면서 참깨를 쪼아 먹는 참새의 모습이 정겨워 보이는 곳이다.

카페를 나와 골목길에 접어들면 유모차를 밀고 마을 회관으로 향하는 할머니들을 만날 수도 있다. 우리 할머니들의 모습이다.

대문 없는 마당을 기웃거리면 들어오라는 할머니의 손짓에서 농촌의 인정이 느껴진다.

계절별로 나오는 농산물을 이용해 수제청을 만들고 빵을 굽는다.

가장 자연스러운 빵을 만든다. 식물성 재료를 쓰는 비건 빵이다. 버터 대신에 유채유를 쓰고, 우유 대신에 두유, 설탕 대신에 유기농 원당이나 메이플 시럽을 사용한다.

단백하고 구수한 맛이 좋다는 평을 듣는다.

밀가루는 직접 재배한 우리밀을 사용한다. 계절에 백향과와 생강, 블루베리, 산딸기를 이용해 수제청도 만든다.

수확한 백향과.
◆농촌체험형 마을을 만들고 싶어

김 대표의 꿈은 크다.

마을 전체를 농촌체험 마을로 만들고 싶어 한다. 농장이 있는 입천리 주변은 문무대왕암과 기림사, 감은사지의 동탑과 서탑, 주상절리 등 수많은 문화재와 스토리를 품고 있다. 체험마을의 조건을 두루 갖춘 곳이다.

다앙햔 문화재와 마을의 체험활동을 연계한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이를 위해 경주의 청년농부들과 힘을 모으고 있다. 현재 뜻을 같이하는 6명의 청년농부가 자신이 재배하는 작물을 중심으로 체험을 준비 중이다.

작물의 종류가 다양해 연중 체험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농촌체험마을을 통해 대종천의 전설을 재현하는 것이 목표다.

“고려 때 몽고군이 황룡사 대종을 약탈해 가다가 대종천에 빠트렸다”며 “이제는 들을 수 없는 크고 웅장한 대종소리를 대신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농촌체험마을을 만들고 싶다”고 김 대표는 소망했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민간전문위원)

이동률 leedr@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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