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100달러 시대 재진입보다 중요한 것

발행일 2021-10-20 10:27:2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국제유가가 심상치 않다. 중동의 두바이유(Dubai Oil)는 물론이고 미국 WTI(서부텍사스 중질유)와 영국 북해에서 생산되는 브렌트유(Brent Oil)에 이르기까지 세계 3대 유종의 가격이 배럴 당 80달러 선을 넘어서 100달러대를 목전에 두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두바이유와 WTI가 매우 중요한데 두바이유는 전체 원유 수입의 8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국내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WTI는 세계 경제를 이끄는 미국 경제는 물론 글로벌 원자재 뿐 아니라 외환 및 자산 시장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당연히 다른 상품가격과 마찬가지로 국제유가 역시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상태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매우 복잡다양한 원인으로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중에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도 상당수 포함돼 있어서 시장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상품가격과 마찬가지로 국제유가도 기본적으로는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는 것이 보통이다. 지금처럼 세계 경제가 회복 국면에 있고, 계절적으로도 난방 등 에너지 수요가 많은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면 수요압력이 커지면서 가격 상승을 동반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 반대 상황이라면 가격은 하락하게 된다.

그런데 최근의 상황은 이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특히, 공급측면에서 보면 증가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먼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지속돼온 공급 과잉 문제가 해소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산유국 및 주요 기업들의 생산설비 투자 지연 현상이 이어지면서 유가 상승 국면에서도 단기간에 산유량을 크게 늘리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중동의 주요 산유국들은 기존 설비를 활용해 국제유가가 안정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원유 증산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는 있지만, 여기에는 국제 정세의 난맥이 자리잡고 있어서 이 또한 쉽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OPEC(석유수출국기구)에 속한 14개 회원국과 비OPEC 산유국 간 협의체인 OPEC플러스와 미국 간의 대립이 급등하는 국제유가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의 경우, 바이든 행정부 들어 인권을 중시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세가 반체제 유력 언론인 살해 의혹을 받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오래전부터 미국의 견제를 받던 러시아 입장에서는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다. 당연히 현재로서는 바이든 행정부의 원유 증산 요구에 대해 냉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단기간에 해결될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물론, 유가 급등 덕에 채산성이 개선된 셰일오일 등 이른바 비전통에너지 생산량이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OPEC 플러스가 유가에 미치는 영향력을 얼마나 상쇄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그런 기대보다 지금 당장 걱정해야 할 것은 유가 상승도 문제지만, 원달러 환율의 동반 상승(원화가치 하락)이다. 통상은 유가 상승에 대한 기대로 국제투자자본이 안전자산인 달러화로부터 이탈하면서 달러화는 약세를 보이는 대신 원화가치는 적어도 강보합세로 원유 수입 부담을 경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 경기 회복세가 기대만큼 강하지 않은 가운데 글로벌 공급 병목현상마저 이어지면서 향후 전망을 어둡게 하는 등 유가 이외에도 다양한 리스크가 부상하면서 오히려 원화 환율의 상방 압력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당연히, 원화 환산 원유 도입단가는 물론이고 국내 체감유가는 명목 국제유가보다 더 빨리 상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하튼 최근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배럴 당 100달러짜리 옵션 거래가 활발하고, 심지어는 배럴 당 150억 달러 이상의 옵션 거래도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시장에서는 그만큼 유가상승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는 말이고, 유가 100달러 시대 진입 여부는 더 이상 핵심 현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우리 경제와 사회가 유가 급등으로 인한 피해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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