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힘을 비롯한 범야권은 정권교체라는 명분 속에 확장성을 강조해 왔다. 윤석렬 전 검찰총장을 비롯해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국민의 힘에 입당한 것이 구체적 실례다. 이에 반해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친노, 친문계와는 다소 동떨어진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대통령 후보자로 선출했다. ‘혜경궁 김씨’ 사건으로 친문 세력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던 점을 떠올려 보면 새삼 한국 정치의 새로운 모습임을 실감한다. 정권 연장과 문재인 수호라는 더불어민주당과 정권교체와 문재인 심판이라는 야권의 정치 프레임이 맞물려 만들어진 재미난 현상임이 분명하다.
윤석렬 전 검찰총장은 문재인 정권 초기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했다. 이른바 전 정권의 적폐 수사를 진두지휘해 왔으며 박근혜, 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을 교도소로 보냈다. 국민의 힘과 보수의 궤멸을 목표로 한 진보세력의 선봉장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이 검사라는 직업의 필연적 소명이었다 한들 보수층 입장은 받아들일 수 없는 허구적 명분일 뿐이었다. 임기가 끝나지 않은 문재인 정부의 최재형 전 감사원장에 대한 보수의 시각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혜경궁 김씨’ 사건은 경기도지사 선거가 한창인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친문 핵심인 전해철 국회의원이 민주당 후보로 경기지사 경선에 나오게 됐다. 당시 53명의 민주당 국회의원이 지지 선언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가 어느 정도로 친문의 핵심인사였는지 짐작되는 부분이다. 친문 극렬지지자들의 ‘문재인 지키기’는 전해철 의원을 내세운 경기도지사 경선에서 폭발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수많은 비난 글과 동시에 이재명 지사에 대한 찬양 글이 트위터 계정에서 발견되면서 사건은 시작됐다. 당시 트위터 계정의 아이디가 이재명의 부인 이름과 생년월일이 일치하면서 그 의혹은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는 탁란의 계절이 될 것 같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의심은 접어두고 내 알이겠거니 믿으며 둥지를 지키려는 어미 새의 마음처럼 보수와 진보진영은 동일한 문제에 대해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정권을 지키느냐, 아니면 뺐느냐?’의 제로섬 게임에 빠져든 듯 보인다.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현재 한국 정치의 흐름과 현상이 그것을 방증하고 있다. 보수의 적이었던 윤 전 총장에 대한 보수층의 지지가 기존 보수의 상징이던 홍준표나 유승민 의원을 앞서고 있다. 오히려 문재인과 신적폐로 불리는 진보를 향한 칼춤을 강골 검사였던 윤석렬이 해주리라는 기대감에 빠져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친문 세력도 예외는 아니다. 친문 극렬지지자의 커뮤니티인 ‘클리앙’에서는 화천대유 사건을 소소한 민간 투자자가 얻은 정당한 이득이라는 옹호의 글들로 넘쳐난다. 이재명 도지사에 대해 이명박 전 대통령보다 더한 인간말종이라고 비난하던 글들은 사라지고 있다. 오히려 박근혜, 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언급한 이낙연 후보의 경선불복을 비난하고 있다. 두 진영 모두 이기적 집단최면에 빠져있는 듯하다.
이쯤에서 우리는 ‘탁란’의 아이러니가 갖는 오묘한 자연의 법칙을 배워야 한다. 내 자식만이 아니라 험난한 자연의 생존 법칙에서 건강한 성체로 자라게끔 희생한 몸집 작은 어미 새의 희생이 그것이다. ‘흑묘백묘’란 말처럼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국민의 삶을 윤택하게 할 지도자를 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분열된 국민을 통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편가르기’에 지친 국민을 위로하고 국민을 위해 희생하는 지도자가 한국 정치의 미래가 돼야 함은 분명하다.
김시욱 (에녹 원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