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수험생 엄마가 급히 상담하고 싶다고 했다. 약속 시간을 정했다. 엄마와 딸이 왔다. 고3 수험생이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의대 진학을 위해 수능 공부를 한다고 했다. 국립 사범대학 수학교육학과를 수석으로 입학해서 수석으로 졸업했다고 했다. 재학 중에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한 드물게 보는 모범 청년이었다. 올해도 그 청년이 응시하는 지역 임용고시에서 수학은 2명밖에 안 뽑는다고 했다. 매년 다섯 명도 안 뽑는데 이를 위해 계속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수능 공부를 다시 시작했단다. 주변 사람들이 반대하는데 이 선택이 옳은지를 물었다.

나는 선택을 잘했다며 학생을 지지했다. 수학교육학과를 졸업했다면 수학교습소를 차려도 일반 기업체보다 수입이 좋을 수 있다. 인터넷 강의 등에 진출해 성공하면 연봉으로 수십, 수백억을 받을 수도 있다. 다만 가르치는 일이 즐겁고 적성에 맞아야 한다. 학생은 가르치는 일이 싫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매우 즐겁지도 않다고 했다. 임용고시를 포기하는 또 다른 이유는 연금 제도도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도 맞다. 연금제도는 궁극에 가면 국민연금과 비슷하게 될 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교직에 보람을 느끼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교직의 꿈을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했다. 이 말 역시 맞다. 지금 교권은 바닥까지 추락했다. 학생과 학부모의 권리 주장이 너무 강해 교사의 자존감은 심하게 훼손됐고 사기는 그 어느 때보다 저하돼 있다. 교육 현장의 분위기가 이러하니 교직에 대한 사명감은 줄어들고 그냥 안정된 직장으로 생각하는 교사가 많다. 시대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어느 초등 교사가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치고받는 두 아이의 싸움을 말리고 훈계했다. 둘은 5학년 1반과 2반 학생이었다. 학생을 지도한 교사는 1반 담임이었다. 그다음 날 2반 학부모가 와서 자기 반 아이도 아닌데 왜 꾸중했느냐고 거세게 항의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이런 일을 자주 겪다 보면 기본적인 의무 외에는 무관심이 최고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나는 직선으로 선출하는 교육감은 교육자가 아니고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교육감은 교권의 확립과 보호보다는 표를 얻고 지키는 활동을 더 중시하는 정치인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학생과 이야기하며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학생의 진지하고 당당한 태도에 감동했다. 참으로 힘들지만, 우리 세대보다 훨씬 능력 있고 잘 자란 청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립사범대 출신 교사의 이직을 막기 위해 4년을 의무적으로 근무하지 않으면 교사 자격증을 박탈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사립학교 출신 교사자격증 소지자도 대부분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한 세대 남짓한 기간에 상전벽해의 대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선망의 대상이었던 사범대학 수학교육학과와 영어교육학과가 이제 취직이 거의 되지 않는 대표적인 학과로 전락했다. 학생의 이야기를 같이 듣던 국립 사범대 출신의 아내도 기막힌 현실에 깜짝 놀라며 그 청년을 위로하며 격려했다. 장 폴 사르트르는 “지옥이란 타인의 시선이다”라고 했다. 그 청년은 이 말을 실감한다고 했다. 나는 남의 눈을 의식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처럼 남 일에 관심 많고 비교 잘하는 사회가 청년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교육 당국은 이 상태를 그냥 방치해서는 안 된다. 교사 수급을 고려해 사범대학과 교육대학 정원을 조정하고 졸업 후에는 임용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학창 시절에 여행도 하고, 책도 읽으며 좋은 교사에게 필요한 교양과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입학과 동시에 오로지 임용고시 공부만 한 교사가 학생을 제대로 지도할 수 있을까. 교사에게는 섬세한 감성과 함께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각박하고 메마른 성정을 가진 사람에게 교직은 맞지 않는다. “한두 명 뽑는 자리를 두고 수백 명이 경쟁하는 곳은 ‘지옥’과 같다”는 임용고시 준비생의 말에 공감한다. 단테는 신곡 ‘지옥편’에서 지옥이란 희망을 품을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국가는 일하고 싶은 청년들에게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나는 상담 도중 울컥했지만, 청년의 의연한 태도를 보며 안도했다. 그리고 감사했다. 세상을 탓하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고 고마웠다.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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