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정완영

발행일 2021-10-14 09:14:57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가을은 질그릇 굽듯 하루하루를 구워낸다/풀끝에 풀씨 같은 것 꼭 그런 것 말고라도/절로는 금이 간 가슴 고향생각 뭐 그런 것//설사 세월이야 강물이라 할지라도/한번 흘러 다시 못 오는 강물이라 할지라도/가을은 흐르는 강나루 나룻배쯤 뒀나부다//넉새배 무명실 같은 눈물 말린 구름 같은/그 세월 나룻터에도 나룻배는 있었던가/아내는 억새풀 친정의 성묫길을 가겠단다//백리 밖 진머리엔 기러기 왔다는데/칼 짚은 산하에도 흩어지는 가을바람/가을은 강물도 구워 한바다로 보내누나

「노래는 아직 남아」(토방, 2006)

정완영 선생은 경북 김천 출생으로 1962년 등단했다. ‘채춘보’ 외 많은 시조집과 ‘꽃가지를 흔들 듯이’ 외 다수의 동시조집을 남겼다. 김상옥, 이호우 시인과 더불어 삼가시인으로 불린다.

선생은 영남시조문학회를 탈퇴했을 때 바로 엽서를 보내셨다. 꽃가지도 한데 어울려 사는데 어찌 떠났는가 하면서 돌아와서 함께 하자고 하셨다. 어느 해인가 낙강 동인지 발간 모임을 수성못 옆 호수장에서 가졌을 때 이번 책에서 내가 딱 한 편을 고른다면 이정환의 ‘어느 날 저녁의 시’라고 말씀하셨다. 단시조로서 아주 잘 됐다는 것이다. 그때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창밖으로 보이던 수성못물이 유난히 반짝이던 날이었다.

1987년 첫 시조집 ‘아침 반감’을 서울 영언문화사에서 펴냈을 때 선생은 엽서를 보내주셨다. ‘아침 반감’과 같은 작품은 시조가 갈 길이 아니니 그 길을 접고 시조로 돌아오라는 말씀이었다. 따로 답은 드리지 않았지만 속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선생님 저는 제 길을 갈 것입니다. 조금도 염려하시지 마십시오.’ 그렇게 소리 없는 답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아류! 나로서는 아류에 대한 나름의 엄한 경계였던 셈이다.

‘가을은’은 참신하면서도 고조의 정서가 배어난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것조차도 이젠 그리움의 정조다. 직유의 달인이자 가락의 대가가 아닌가? 그렇기에 가을은 강물도 구워 한바다로 보낸다고 노래했을 것이다. 가을은 질그릇 굽듯 하루하루를 구워낸다, 라면서 풀끝에 풀씨 같은 것 꼭 그런 것 말고라도 절로는 금이 간 가슴 고향생각 뭐 그런 것을 자연스럽게 제시해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감칠 맛 나는 이미지의 직조가 한눈에 그려지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걸출한 작품을 남겼지만, 내가 으뜸으로 꼽는 작품은 따로 있다. 바로 ‘간만의 차’다.

서울에서 바라볼 때는 이 제주가 섬이더니

정작 제주에 서니 서울이 또한 절도로고

생각도 차고 이우는 이 간만의 사이사이

실로 절창이다. 물리에서 말하는 위치에너지가 행간에서 읽힌다. 서울과 제주, 제주와 서울 사이의 거리가 이토록 아름다운 미학적 깊이를 획득하다니. 역시 백수 선생님이시다. 더니, 로고와 같은 고투가 장치돼 있어도 전혀 예스럽지가 않다. 도랑물만한 피로를 이끌고 들어선 찻집이라는 구절이 지금도 심금을 울린다. 지론 중에 하나가 시조는 경을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즉 한 경지를 열 수 있어야 좋은 시조라는 뜻이다. 또한 시조는 3장중에 한 장은 긴장의 고삐가 풀려 있어야지 자연스러운 흐름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칫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문제를 풀어나가는 길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백수 정완영 선생은 시조와 동시조에서 불후의 명작을 적잖게 남겼으니 복된 일생이었다.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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