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에서 바둑을 두는 할아버지들, 평화로운 종묘 돌담길 따라 걷는 코스, 곳곳에 숨겨진 카페와 맥주집, 광장시장에서 먹어보는 녹두전과 김말이, 송해길 포장마차에서 맛보는 소주+오징어튀김, 이북 음식점들, 즐비한 금은방….

서울 종로3가의 모습이다. 최근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동네’ 3위로 선정됐다. 세계 여행 잡지 ‘타임아웃’은 지난 6일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동네 49곳을 소개하면서 덴마크 코펜하겐의 뇌레브로와 미국 시카고 앤더슨빌에 이어 종로3가를 3위로 꼽았다. ‘타임아웃’은 동네 주민 2만7천명과 지역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순위를 정한다고 밝혔다. 다만 올해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음식, 주류, 문화 뿐 아니라 지역 공동체 정신과 지속 가능성도 평가 기준에 포함됐다.

종로3가를 ‘서울의 심장이자 영혼’이라 표현한 타임아웃은 이곳을 ‘유서 깊고 별난 곳이자 가식 없는 곳’이라며 궁전과 미술관 등 다양한 관광거리가 있다고 소개했다. 맞는 말이다. 제대로 소개한 것 같다. 하지만 서울 종로3가만 그럴까. 대구도 알고 보면 서울 종로3가 못지않다.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동네로 꼽힐 만큼 매력적인 곳이 대구에도 많다는 말이다.

지난주 서성로의 한 카페에 들렀다가 우연찮게 시낭송회를 보게 됐다. 최근 시집을 낸 한 시인의 시를 이 카페에서 시낭송가들이 낭송하고 있었다. 민족시인 이상화의 생가에 자리잡은 이 카페는 이미 대구지역 시인들을 비롯한 문학가, 화가 등 예술가들의 사랑방으로 애용되고 있는 곳이다. 시낭송 뿐 아니라 각종 전시회와 음악회, 강연이 열리는 문화공간이다. 역사학자와 교수 등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을 중심으로 서성로, 북성로, 남성로와 계산동 남산동 일대는 이상화·이장희·백기만 시인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다. 이인성고택과 이병철고택~삼성상회 옛터~우현서루 옛터~달성토성을 잇는 코스도 외국인들에겐 인상적인 길이 될 수도 있다. 세계적인 기업인 삼성의 출발지임을 안다면 대구를 찾는 내외국인들도 흥미를 느낄 것이다. 이상화 생가에 있는 200년 수령의 라일락나무인 이상화 나무와, 가까운 계산성당 내에 이인성 나무, 경상감영공원 옆 종로초등학교에 있는 최제우 나무를 연계한 ‘노거수 관광’ 스토리도 잊어버리기엔 아까운 유산이다.

무엇보다 이 남성로~서성로~북성로 일대는 대구를 대표하는 시인의 젊음과 수많은 일화를 간직한 곳이고 시심을 가다듬은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다. 대구의 근대문학 태동길이라 이름 지어도 손색없는 스토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역사교육의 장으로, 대구 근대문학 관광콘텐츠로 충분히 활용할 만한 자산이다.

북성로엔 예전에 비해 줄어들긴 했지만 종로3가 송해길 포장마차 못지않은 돼지불고기 포장마차 골목이 있다. 돼지고기집이 늘어선 서성로 돼지골목은 한국식 샤퀴테리로 홍보해도 인상적일 듯하다.

이곳에서 지척인 청라언덕도 문화와 역사를 품고 있는 근대문화유산이다. 지은 지 100년이 넘은 붉은 벽돌집들이 몇 채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20세기 전후 대구에 와서 자리 잡은 미국 선교사들의 집이다. 실제 미국에서도 보기 힘든 당시의 건축양식이 잘 보존돼 있어 외국인 관광객들도 놀라움을 보이는 장소이다. 벽돌집 아래쪽의 정원엔 이곳에서 살았던 선교사와 그 가족이 안장돼 있다. 언덕 위쪽엔 선교사들이 가져와서 심었다는 대구 최초의 서양 사과나무가 있다. 대구사과의 시조목으로 지금은 2세목과 3세목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여기서 3·1만세운동길을 따라 내려오면 계산성당과 약전골목이다. 일대는 근대문화 유산 뿐 아니라 오래된 식당과 종로 식당거리의 술집 등이 즐비하다. 타임아웃의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동네 중요 선정 기준인 고유의 이야기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유산들은 늘 우리 주변에 있어왔기 때문에 오히려 소중함을 모르는 경우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말이 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이 말을 명심한다면 대구의 서성로와 북성로 일대 역시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동네가 될 수도 있다.

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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