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은상- 권상연 ‘숨구멍, 타포니에 돌을 얹다’

발행일 2021-10-13 14:02:2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어머니는 빈손이다. 급하게 나오느라 지팡이를 잊고 손가방마저 잊었다. 행여나 떼놓고 갈까 봐 몸만 따라나선 모양이다. 아흔 줄에 선 어머니의 걸음이 위태위태하다. 한 발짝 뗄 때마다 이마 골 주름도 덩달아 깊어간다. 그 속에 잠긴 수심이 동굴 속 그림자 같아 가슴에 서늘한 바람이 든다.

골굴사는 사람의 뼈대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해골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신라의 고승, 원효가 열반에 든 절이라 한다. 얼마나 오랫동안 풍화되었던 걸까. 암흑색 살점을 다 뜯기고 앙상한 뼈대로만 서 있다. 나뭇가지가 삭정이처럼 내려앉아 거무칙칙하여 기괴해 보인다. 바위의 윤곽선마저 거미줄 친 것처럼 얽혀있어 절이라기보다는 버려진 성채에 가깝다.

골굴사는 자연 타포니에 인공미를 가미한 석굴사원이다. 6세기 무렵 인도에서 온 광유선인 일행이 경주시 양남면 함월산 자락에 당시 인도 석굴사원 양식인 12처 석굴을 조성했다. 인도 사원의 생활방식이 그대로 반영된 걸로 보아 골굴암은 단순히 동굴에 불상을 조성한 것만은 아니었지 싶다.

한반도에서 떨어져 나간 일본을 끌어안느라 힘에 부쳤는가. 골굴암 일대의 땅이 흔들리면서 벌어졌다. 주변에 널린 화산 퇴적물로 상처를 꿰매듯 틈을 메웠지만 응회암 지질구조로 변해버린 암석은 쉽게 깎이고 쪼개졌다. 비바람이 칠 때마다 암석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 작은 구멍이 생겨났다. 신생대 제4기의 간빙기와 빙하기를 이겨낸 구멍들이 점점 커지며 발달한 것을 타포니라 한다.

타포니가 집중적으로 발달한 수직 절벽 꼭대기에 마애여래좌상이 조각되어 있다. 바람에 갈리고 빗물에 씻긴 흔적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희다. 하늘의 구름이 여래불상의 뒷면을 감싸 안아 마치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다. 흑요석 같은 타포니를 방석으로 깔고 앉아 중생을 향해 온화한 미소를 보낸다.

골굴암 수직 절벽 계단 앞에 어머니가 서 있다. 마음처럼 오르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허연 입김으로 토해진다. 햇빛을 받아 더 희게 보이는 어머니가 간절한 마음을 담아 약사여래불을 향해 합장을 한다. 해풍이 망토 한 자락을 뒤척이자 주름진 얼굴이 드러난다. 꽁꽁 싸맸던 얼굴 위로 햇살이 들자 주름골마다 그늘이 앉는다. 암석을 덮은 이끼처럼 핏기 없어 마른 얼굴 위로 타포니가 새겨진다.

신라인들에게 있어 타포니는 구원으로 가는 기도처였다. 골품 제도의 밑바닥서 내세를 꿈꿨던 민초들의 숨구멍이었다. 왕실과 귀족들이 화려한 절을 세우고 높은 탑을 쌓을 때 끼니를 이어가기에 급급했던 서민들은 타포니에 돌 하나를 얹으면서 위안을 얻었다. 불교가 서민층으로 확산되고 인도의 불교 양식이 신라에서 번창한 이면에는 골굴암 구석구석에 박인 타포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람이 뚫어 놓은 아치형의 굴을 지난다. 굴을 통과할 때는 신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누구나 고개를 숙여야 한다. 멀리서 바라봤을 때보다 훨씬 거칠다. 바닥을 편편히 하여 발을 디디니 훨씬 수월하다. 사람 하나 들 공간만 있으면 부처님을 모셨다. 넉넉하게 파인 굴속에 안치된 애기 부처님이 미소를 보내온다. 바위의 윤곽선을 덮은 이끼들이 연꽃처럼 새하얗다.

손을 뻗어 타포니의 천장을 더듬어 본다. 해풍에 갈려서인지 결마다 꺼끌꺼끌하다. 자칫하다간 뾰족한 날에 손을 벨까 염려스럽다. 타포니 속에 돌들이 쌓여있다. 수없이 허물어졌다 다시 쌓여진 돌들이다. 너무 작은 돌들이 포개어져 있어 탑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것도 있다. 등 뒤에서 어머니의 염려 섞인 음성이 들려온다. 내 동선을 쫓아 올라온 어머니의 눈길을 그제야 돌아본다.

평범한 돌멩이도 타포니에 든 순간 신성한 돌이 된다. 신라의 고승 원효는 일심유심체로 일반 백성들에게 불교를 전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깨달음을 얻으면 극락왕생할 수 있다는 원효의 가르침은 골굴벽에 새겨진 부처님으로 되살아났다. 균형을 맞추려고 암석을 떼어낸 자리에 흔하디흔한 돌 하나를 올린다. 내세에서나마 구원 받기를 바라면서.

약사여래불 조각상에서 내려와 절벽 중간쯤에 이르니 관음굴이 있다. 타포니를 다듬어 만든 석실에 불상을 배치한 국내 최고의 석굴이라 한다. 좀 전에 지나왔던 여느 타포니들과는 다르다. 동굴 전체에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시꺼멓게 그을린 벽면을 따라 시선을 옮겨본다. 검은 구름이 뭉실뭉실 부처님 뒤편에 멈췄는가 싶더니 이내 어둠이 사라진다. 내세를 기약하는 인등들이 은은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굴속에 편편한 방처럼 생긴 돌이 있었다. 그 돌을 베고 누우면 차지도 않고 훈훈하여 병자가 거주하면 병이 낫기도 했다. 굴벽에는 어느 때 조성된 것이지 알 수 없는 석불이 있는데 연기에 끄슬려서 그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다. 천장에 조각한 석불에서는 자주 서광이 빛나며 산곡과 동천 석굴에까지 비친다고 한다. 12처 석굴의 모습이 기록에 남아 있는 걸로 보아 병을 치유하려는 종교적 측면이 강조되었지 않았나 싶다.

어머니 심중에도 관음굴 같은 타포니가 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어머니의 시간이 새까맣게 태운 동굴이다. 두 자식을 가슴에 묻은 후 태어난 언니는 어머니에게 각별했다. 그런 언니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을 때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어느 자식인들 소중하지 않은 이가 있을까마는 부모보다 앞선 자식만큼 애끓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가슴에 구멍을 파 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타포니를 이용하여 길을 내는 것이다. 복잡하고 풀 수 없을 것 같은 이해관계도 조금만 물러서 보면 길이 보이고 때로는 굴을 뚫듯 길을 만들 수도 있다. 길을 낸다는 것은 시커멓게 그을려 피멍이 들지라도, 뼈마디가 아프다고 아우성치더라도, 스스로 단련시켜 치유해 가야 할 기도가 아닐까. 누나가 되고 어머니가 되고 노인이 되어가면서 저절로 갖게 되는 소망 하나를 가슴에 품는 일이지 싶다.

하마터면 머리를 부딪칠 뻔했다. 작은 키라 웬만하면 걸리지 않을 거라 자만했던가. 제법 큰 굴이라 잠시 쉬어가려던 속셈을 들켜버린 모양이다. 질서 없이 깎인 암벽이 처마처럼 얹힌 나지막한 타포니에 든다. 얼기설기 얽힌 곰보자국 같은, 태양의 흑점처럼 새까만 타포니가 바위마다 점점이 박혀있다. 응회암의 약점을 파고든 비바람이 빚은 예술품 속에서 옛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무릎 끓고 합장한다.

바닥과 수평을 이룬 어머니의 허리가 간신히 펴진다. 환한 웃음을 띤 어머니의 손이 주먹을 쥔다. 눈에 보일 듯 말 듯 한 작은 돌이 타포니에 든다. 타포니에 자식을 담는다. 산 자식은 자잘한 타포니에 돌을 얹고, 죽은 자식은 관음굴 같이 뻥 뚫린 타포니에 탑을 쌓는다. 골굴암에 쌓지 못한 돌들은 또 얼마나 될까? 어머니의 마른 두 손이 합장하니 약사여래불이 따로 없다.

두 여래불이 마주 섰다. 한 사람은 하늘 가까이서, 또 하나의 여래불은 바닥에서. 가파른 계단이 사다리가 되어 둘을 묶는다. 서로를 향해 미소를 보낸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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