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서체의 문장을 천천히 따라가요/맑고 아름다운 나비의 홑겹 노래/읽힐 듯 읽히지 않는/쓸쓸한 비문이죠//나비를 부축하는 바람의 행려와/무릎에 고개를 묻은 초로의 저 남자/마음이 출구를 잃어/안개 속에 갇혀요//서풍의 갈피에 희미한 울음 몇 올/꽃의 이마 쓰다듬는 봄의 미간 어두워요/누구나 세상에 와서/조금씩 울다 가죠

「가람시학」(2018, 제9호)

정혜숙 시인은 2003년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앵남리 삽화’, ‘그 말을 추려 읽다’, ‘흰 그늘 아래’ 등이 있다.

‘나비의 문장을 읽어요’는 동화처럼 들린다. 나비에게도 문장이 있듯이 나무에게, 풀에게, 바람에게, 하늘에게 그리고 사람에게도 문장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문장을 가지고 그 문장을 늘 음미하면서 일생을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의 화자는 초서체의 문장을 천천히 따라가요, 라고 권유한다. 초서는 자체(字體)를 간략하고 빠르게 흘려 쓴 글씨체다. 그런데 그 문장은 맑고 아름다운 나비의 홑겹 노래이자 읽힐 듯 읽히지 않는 쓸쓸한 비문이라고 말한다. 흡사 우리를 둘러싼 이 세상이 신비로 가득한 것처럼 나비의 홑겹 노래도 그렇다는 말로 들린다. 다음으로 나비를 부축하는 바람의 행려와 무릎에 고개를 묻은 초로의 저 남자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이 정황은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이때 마음이 출구를 잃어 안개 속에 갇힌다. 서풍의 갈피에 희미한 울음 몇 올이 어리고, 꽃의 이마를 쓰다듬는 봄의 미간이 어두워 온다. 그런 후 결구에서 화자는 조심스레 누구나 세상에 와서 조금씩 울다 가죠, 라고 속삭인다. 그런데 이 구절을 동의하기가 어렵다. 조금씩 울다가는 정도가 아니라 일생을 두고 여러 차례 대성통곡을 하지 않았던가. 잔잔히 흐느낄 때도 많았지만 그야말로 목 놓아 울 때도 적지 않았다. 적어도 한평생을 살아왔다면 말이다. 다 읽고 나니 ‘나비의 문장을 읽어요’의 중반에 나오는 무릎에 고개를 묻은 초로의 한 남자가 계속 생각난다. 나비를 부축하는 바람의 행려가 클로즈업되면서 그 남자의 출구에 대해 궁구하게 된다. 정혜숙 시인의 시 세계는 이렇듯 섬세하고 미묘하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되 삶이 녹록치 않은 점을 행간에 잘 녹여놓고 있다.

그는 또 ‘거긴 여기서 멀다’에서 색다른 노래를 부른다. 에스프레소 한 잔으로 오늘도 잠은 멀다, 라면서 무표정한 시간은 여전히 나를 비껴가고 어둠의 봉인을 뜯는 흰 달이 높이 떴다, 라고 미적 분위기를 구현하고 있다. 여기서 어둠의 봉인이라는 구절이 뇌리에 각인되는 것을 느낀다. 선명한 이미지다. 무딘 칼날에도 마음은 움푹 파이고 소리 내어 울지 않아도 옷섶이 흥건한 정황까지 이어지면서 지명을 모르는 바람이 위로처럼 건 듯 분다, 라고 진술한다. 끝수에서 거긴 여기서 멀다, 라고 말하는 곳은 그리운 은적사다. 은적사라는 절은 대구 앞산에 있다. 어디 대구에만 있으랴. 전국 도처에 있을 것이다. 혹은 시인의 상상 속의 절일 수도 있다. 도라지꽃 보랏빛 문장 아직 거기 있는지, 라고 물으면서 맑은 그리움을 드러낸다. 그래서 때로는 네가 그립다, 라는 말이 곡진하게 들린다. 숨어 살기 좋은 곳, 은적사이기 때문이다.

정혜숙 시인, 그의 시 세계는 이처럼 진솔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개성적인 측면에서 보면 남다르다. 문체가 이채롭고 시적 발화가 참신하다. 사나흘 은자처럼 세상 일은 멀리 두고 바람의 후렴이 옷섶에 흥건해도 혼곤한 잠에 들겠다, 라는 노래를 연이어 부르는 그의 시업의 길에 응원을 보낸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차다. 시와 마주하기 좋은 철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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