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나’의 소환, 과연 추억일 뿐인가?

발행일 2021-09-30 14:20:14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김시욱 에녹 원장

유년 시절, 도청 옆 산격동 주변엔 온통 채소밭이었다. 이른 아침 거름으로 사용하는 인분통을 짊어진 동네 아저씨의 모습은 일상의 풍경이었다. 굽이 흐르는 금호강을 따라 그렇게 채소는 푸르게 자랐다. 그 시절 무리 지어 하교하는 조무래기들의 관심을 끄는 최고의 놀이는 ‘달고나’였다. 색깔과 모양을 빗대 ‘똥 과자’ 혹은 ‘뽑기’라 부르기도 했다. 주전부리가 많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젓가락 끝에서 묻어 나오는 쌉쌀한 달콤함은 천국의 맛이었다. 넉넉하거나 정갈한 환경은 아니지만, 그것은 서민의 행복한 삶이었다.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소개된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어린 시절의 놀이가 소개되는 드라마인 이유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지하철 선로 옆 ‘딱지치기’로 시작되는 드라마는 시간이 지날수록 ‘생존과 일확천금’이라는 현대적 모티브(motive)로 접근한다. 빚에 찌든 서민들의 삶 속에서 생존은 곧 돈이란 공식이 설정된다. 편법을 통해 일확천금을 노린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평범하게 자신의 직업에 몰입해 온 실패자들이었다. 특히 주인공의 성장 배경이 되는 시장은 삶의 처절함과 성실이 묻어나는 공간이다. 시장이란 누구보다 먼저 새벽을 깨우는 공간이자 다양한 인물과 물건들이 어우러진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집약된 공간이다. 드라마 속 게임의 승자에게 주어지는 456억은 모든 것을 치유하는 장치로 등장한다.

드라마 속에서는 적지 않은 재미난 사회 풍자 요소가 숨어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희화화가 그것이다. 계약서 중 과반의 찬성으로 게임을 중지할 수 있다는 조항은 언뜻 보면 ‘자유의사’에 의한 민주적 방법의 게임 참가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들을 섭외하는 과정과 게임 속 자진 탈락은 곧 죽음이라는 부분은 이미 ‘강요된’ 자유의사임이 드러난다. 아이러니의 연속은 과반의 찬성으로 게임을 중지하면 획득한 돈은 죽은 사람들의 유족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죽음을 무릅쓴 자들의 과정은 철저히 무시된다. 민주적 게임이라는 틀 속에 공정과 약자 보호란 얄팍한 방법을 이용한다. 도망쳐 온 현실 속 사회보다 더 무서운 합법으로 가장한 살인의 정당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대장동 특혜의혹’이 ‘오징어 게임’에 못지않게 모든 언론을 달구고 있다. 이재명 도지사의 관련 여부, 곽상도 의원 아들의 고액 퇴직금 문제, 박영수 특검의 딸과 전직 대법관의 고문 변호사직 참여, 전직 언론인 김만배와 이성문이 대표인 화천대유 등 수많은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가짜 수산업자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이지만 정치인과 권력자들이 향하는 방향이 결국 ‘돈’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임은 분명하다. 권력형 비리가 터질 때마다 그들은 ‘합법’적인 과정이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시민과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한 힘겨운 고민의 결정이었음을 강변한다. 마치 ‘오징어 게임’ 속 게임을 지배하는 천문학적 돈을 가진 사채업자와 졸부 외국인들이 외치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에게 시민은 그리고 국민은 단순히 게임 속 ‘말’일 뿐임에도 그들은 솔직한 고백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과정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선거라는 게임 속에서 스스로 ‘말’임을 인정해 온 우리 국민성이 아닌가 싶다. 삶의 전부인 시장에서 오히려 방해되는 정치인들에게 환호하는 적극적(?)인 정치성이 그것이다. 그러기에 정치인들은 선거 때마다 시장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동심을 일으키는 게임들을 죽음의 게임에 대입시킨 이유를 생각해 본다. 합법과 공정, 약자 보호라는 틀 속에 자리하는 살인 게임의 정당성이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궁금하다. 감성에 호소하는 선거 전략이 난무한다. 국민의 목숨 같은 세금을 통한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우리가 ‘말’이 아닌 진정한 주권자가 되는 길은 합법으로 가장한 정치인과 권력자를 골라내는 일이다. 승자가 결정되는 순간, 부모님을 부탁하며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드라마 속 인물이 던지는 화두는 무엇일까? 다음 선거에선 먹고 사는 문제에서 승리하는 국민이 되길 진정으로 희망한다.

김시욱 에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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