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물가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4월부터 6개월 연속 2%대의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고, 가계의 구매 빈도가 높은 141개 품목을 대상으로 산출한 생활물가지수는 지난 5월부터 5개월째 3%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이런 고물가 현상이 단기간 내 해소될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극복 과정에서 풀린 막대한 통화량뿐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한 세계적인 경기 회복세,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훼손된 글로벌 공급망 복구 지연, 원유나 철광석 등 각종 원자재 가격의 급등 등과 같이 지금의 고물가를 지지하고 있는 많은 현상들은 결코 쉽게 해소될 성격의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이런 문제들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유발하는 경로도 제 각각이라는 점도 문제다. 통화량 증대나 경기 회복 및 확장은 지속적으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서 나타나는 이른바 수요 인플레이션(demand-pull inflation)을 유발하는 반면에 원자재 가격의 상승은 제품의 생산비용과 가격을 올려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초래하는 비용 인플레이션(cost-push inflation)을 일으킴으로써 문제 해결을 매우 어렵게 한다.

여기에 더해 이번 달부터 인상분이 반영될 전기요금은 물론이고 연말까지 도시가스, 대중교통, 상하수도요금 등 공공요금마저 줄줄이 인상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서 지금의 물가 상승세를 더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당연히, 그만큼 경제 주체들의 심리가 악화될 것이 뻔한데 이런 심리가 실물 경기에 반영된다면 소비 등 내수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 뻔하다. 이런 현상이 장기간 지속되게 되면 경기 침체 하에서 물가 상승세가 이어지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에 빠질 가능성마저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스태그플레이션을 단기간에 해소할 방법은 없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뛰는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 인상 등 통화량을 줄여야 하는데 이로 인한 경기 둔화는 감내해야 한다. 공급량은 늘리는 것 역시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혁신 등을 통한 비용 축소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통화정책을 포함한 거시경제 안정화 정책은 물론 산업 정책 등 미시적인 정책 등도 단기적으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그 과정에서 가계는 이중삼중의 고통을 떠 안을 가능성이 크다. 첫 번째는 물가 상승에 따르는 후생수준의 악화를 감내해야 한다. 당장 이번 달부터 인상된 우유 가격을 생각해보자. 우유를 주원료로 한 유제품 가격 인상이 뒤 따를 것이고, 다음에는 유제품을 이용한 빵이나 과자 등의 가격도 오를 것이다. 소비여력이 충분한 가계를 제외한 대부분의 가계가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둘째는 물가 상승 억제를 위한 통화정책의 변화로 가계의 이자부담이 커진다는 점이다. 금리 인상 등 미국 연준(Fed)의 테이퍼링 시기에 앞서 선제적인 대응에 나선 통화정책 당국의 움직임이 더 빨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통화정책 당국은 기준금리를 1%까지 올려도 1천800조 원이 넘는 부채를 지고 있는 가계의 이자부담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물가 상승세가 이어진다면 기준금리 수준은 그 이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셋째는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는 만큼 고용 환경 개선세가 지연되면서 가계의 임금소득이 정체 또는 감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내년에도 3%대 성장을 기대하는 기관들이 많지만, 물가 상승 압력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장담할 수 없는 일이어서 가계 특히 취약계층에 속하는 가계는 삼중고 사중고를 떠 안게 될 것이 뻔하다. 가뜩이나, 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장기화되면서 고용 환경 개선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가계 입장에서는 물가 상승세가 정책당국의 통제 하에서 점진적인 안정세를 되찾아간다면, 그 동안의 후생수준의 하락과 이자부담 상승은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감히 기대는 해본다. 하지만, 이들 우려가 동시에 현실화될 경우 2천만이 넘는 우리 가계에는 너무도 가혹한 일이 된다. 코로나19 팬데믹 후 경기 회복의 대가라고는 하지만 말이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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