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구황동 당간지주’ 명칭을 ‘분황사 당간지주’로 변경

▲ 문화재청이 28일 경북유형문화재인 ‘구황동 당간지주’의 명칭을 ‘분황사 당간지주’로 변경한 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분황사 당간지주 모습.
▲ 문화재청이 28일 경북유형문화재인 ‘구황동 당간지주’의 명칭을 ‘분황사 당간지주’로 변경한 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분황사 당간지주 모습.




문화재청이 경주 분황사와 황룡사 사이에 있는 경북유형문화재인 ‘구황동 당간지주’의 명칭을 ‘분황사 당간지주’로 변경한 후 28일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깃발인 당(幢)을 걸고자 높게 세운 기둥인 당간(幢竿)을 고정하는 지지체로 통일신라시대 초기부터 사찰 입구에 본격적으로 조성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분황사 당간지주는 당간이 사라졌으나, 제작 기법과 양식이 동일한 높이 3.7m 기둥 두 개와 당간을 받친 귀부형 간대석이 비교적 온전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귀부(龜趺)는 거북 모양 받침돌을 뜻하며, 간대석(竿臺石)은 당간을 받치기 위해 하부에 놓는 단이다.





▲ 문화재청이 28일 경북유형문화재인 ‘구황동 당간지주’의 명칭을 ‘분황사 당간지주’로 변경한 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당간지주에서 유일한 형식으로 드러난 거북모습의 받침돌.
▲ 문화재청이 28일 경북유형문화재인 ‘구황동 당간지주’의 명칭을 ‘분황사 당간지주’로 변경한 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당간지주에서 유일한 형식으로 드러난 거북모습의 받침돌.


문화재청 관계자는 “통일신라시대 당간지주 가운데 귀부형 간대석이 있는 사례는 분황사 당간지주가 유일하다”며 “일제강점기에 촬영한 사진 속 모양과 현재 모습에 별 차이가 없는 점으로 미뤄 현대에 외적 변화를 겪지 않은 듯하다”고 설명했다.



당간지주 기둥 두 개는 전반적으로 사각형이다.

상부로 갈수록 조금씩 폭이 좁아진다. 표면은 고르고 정성스럽게 다듬어진 모습이며, 가장 위쪽은 안쪽 면에서 바깥쪽 면으로 부드럽게 곡선을 이루도록 처리했다.



두 기둥에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관통하는 지름 15㎝의 동그란 구멍인 간공(竿孔)이 다른 높이에 세 곳씩 있다.

이처럼 간공을 상·중·하 세 곳에 마련해 당간을 고정하는 기법은 통일신라시대 당간지주의 일반적 양식이다.



제작 시점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앞서 보물로 지정된 경주 망덕사지 당간지주, 경주 보문사지 당간지주, 경주 남간사지 당간지주 등과 형태가 유사해 모두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은 경주지역 주요 사찰의 당간지주와 조성 기법이 흡사하고, 희귀한 귀부형 간대석이 남았다는 점에서 분황사 당간지주가 보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문화재청은 고대 사찰에서 당간지주 배치, 신라시대 분황사 건축물 규모와 배치, 황룡사 당간지주로 짐작되는 파손된 유물이 황룡사 입구에 위치한 점 등을 근거로 구황동 당간지주에서 분황사 당간지주로 명칭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분황사와 황룡사 사찰 배치와 유물 양상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했을 때 분황사 당간지주로 판단된다는 것이 문화재청의 설명이다.



분황사는 신라를 대표하는 사찰 중 하나로 634년에 창건됐다고 전해진다. 건물은 대부분 사라졌으나, 벽돌 형태의 돌을 차곡차곡 쌓은 국보 모전석탑과 보물 석정 등이 남았다.



문화재청은 30일의 예고 기간에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경주 분황사 당간지주의 보물 지정을 확정할 계획이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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