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 같기도 하고 순록 같기도 하고/가느다란 네 다리, 하프 모양 뿔을 가진/가젤은 몽골 초원의 야생동물이라 하는데/시속 7, 80킬로 달려 잡기도 어렵고/몰이꾼들을 내세워 가두기라도 하면/번식을 하지도 않고 심장이 터진다지/어린 새끼 거두어 염소, 양젖을 먹여도/꼭 3개월이 지나면 야생인 줄 어찌 알고/우리를 나가버리는 천생이 집시 같은 그들//먼 데 보는 눈망울만 오래도록 남아 있는/그리 떠나보낸 이가 내게도 있었는지/빈 우리, 화면 꽉 차는 내 서늘 지오그래픽

「열린시학」(2021. 여름호)

김수환 시인은 2013년 시조시학으로 등단했다.

지오그래픽은 지리학적인, 이라는 뜻이다. 즉 지구상에 존재하는 지역과 공간을 계통적으로 분류해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지역을 다루는 지리학은 지표현상을 백과사전식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지표면에서 전개되는 현상들의 지리적·공간적 특성을 파악한다. 그것을 종합해 특정 지역의 성격 내지 지역성을 규명하고, 이를 통해 다른 지역들과의 차이를 고찰하는 학문이다. ‘내 서늘 지오그래픽’은 그런 관점에서 시를 풀어나가고 있다. 사슴 같기도 하고 순록 같기도 하고 가느다란 네 다리, 하프 모양 뿔을 가진 가젤이라는 몽골초원의 야생동물 이야기다. 시속 7, 80킬로 달려 잡기도 어렵고 몰이꾼들을 내세워 가두기라도 하면 번식을 하지도 않고 심장이 터지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어린 새끼 거두어 염소, 양젖을 먹여도 꼭 3개월이 지나면 야생인 줄 스스로 알고 우리를 나가버린다. 그래서 화자는 천생이 집시 같은 그들이라고 부른다. 여기까지는 가젤의 생태에 관한 하나의 보고서다. 그러면 이 이야기만 하고 말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하여 끝수가 더 이어진다. 먼 데 보는 눈망울만 오래도록 남아 있는 그리 떠나보낸 이가 내게도 있었는지를 곰곰이 돌아보고 있다. 결구는 결국 빈 우리, 화면 꽉 차는 내 서늘 지오그래픽, 이라는 긴 여운을 안기는 한 줄로 끝맺는다. 이 작품의 자안 즉 화룡점정은 먼 데 보는 눈망울이다. 또한 그리 떠난 보낸 이다. 그렇기에 빈 우리와 더불어 화면을 꽉 채우는 내 서늘 지오그래픽이라는 차가운 이미지를 직조해 보인 것이다. 지리학을 바탕으로 생태학적 시각을 시종 견지하면서 가젤 이야기를 펼치다가 좁혀서 화자의 이야기를 은근슬쩍 풀어내고 있는 점이 ‘내 서늘 지오그래픽’이다. 지오그래픽이라는 말에서 이미 생명력을 감지하게 되는데 내 서늘, 이 수식하면서 울림이 웅숭깊어졌다. 범수의 솜씨가 아니다.

또 한 편 ‘우포, 비’는 서정성이 농후하다. 이다음 생에서도 그리할 것처럼 그 다음 생애에도 당신 없인 못살 것처럼 물 위에 신음과 같은 안개를 풀어놓고 있는 것을 우포에서 본다. 또한 속절없이 떠가는 얼굴들을 보내고 범람하는 마음은 물결로 가려가며 그 사람, 맨몸 하나로 백악기의 비를 받는 것을 살핀다. 이 작품 속에는 우포와 더불어 당신이 내밀히 자리하고 있다. 당신이 우포 속으로 잠겨들어 와서 깊은 여운을 안긴다. 당신 없이 못살 것 같으면 죽자 사자 그에게 매달려야 한다. 그래야만이 살 수 있다면 그리 해야 마땅하다. 그리할 것처럼, 과 못살 것처럼, 이 이어지면서 미묘한 울림을 안긴다. 되풀이의 묘미다.

‘내 서늘 지오그래픽’이나 ‘우포, 비’는 모두 생태학적 시각에서 비롯된 시편들이다. 이러한 생태사상은 삶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데 순기능을 할 것이다. 자연회복의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터다.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이 인간과 지구촌의 생명을 무섭게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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