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밭에 무엇을 심을지 오랫동안 심사숙고했다. 농사 경험이 없으니 우선 키우기에 쉬워야 하고, 그러면서도 수고한 만큼의 대가도 있어야 하는 작물을 선택해야 했는데 마늘은 우선 심을 때와 수확할 때만 고생 좀 하면 된다는 이웃 농부 아저씨의 권고에 귀가 솔깃해져 버린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스스로는 뭘 선택할 수도 없었다. 농작물을 심고 키우는 과정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으니 그냥 마늘 한번 심어보자는 권고에 홍산마늘이라는 신품종을 심게 된 것이다.
아직 도시에서 일하고 있어서 농사는 그냥 재미 삼아 해보자는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야말로 ‘할 것 없으면 농사나!’ 그런 생각인가 싶겠지만 올해 봄의 텃밭 농사도 경험이라고 그걸 해보고 나서 ‘어찌 농사씩이나!’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렇게 얼렁뚱땅 마늘을 심어 놓고 나니 왠지 모르게 뿌듯해져서 시간만 나면 마늘밭을 둘러보게 됐다. 그런 우리를 보고 농사 경력 십 년 정도인 이웃은 “원숭이 새끼 만져 죽인다더니 그놈의 마늘 심어 놓고 눈병 나겠소”라고 웃었지만, 어찌 눈병이 아니 나겠는가. 그 넓은 밭을 우리가 갈고 마늘을 심다니, 이건 우리 인생에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 눈에는 만경평야를 방불케 하는 그 마늘이 심어진 밭을 볼 때마다 마치 만석꾼 농부처럼 흐뭇해지니 밭고랑이 무너져 내릴 정도로 둘러볼 수밖에.
그렇게 이삼일이 지나고 나니 마늘 뿌리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그 까치란 놈이 마늘을 톡톡 쪼아내어서 비닐 밖으로 던져 놓았다. 날아가는 새를 잡을 수도 없고, “까치가 길조는 무슨, 흉조야 흉조!” 그러면서 밭을 돌아다니며 까치가 쪼아서 내놓은 마늘을 다시 심어주기도 했다. 진짜 농부들이라면 번거로운 일이겠지만 무늬만 농부인 우리는 그마저도 재미있었다. 그냥 심고 가꾸는 일 자체가 재미있었던 것이다.
곡란골에 들어오면서 농사를 지을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집만 시골로 옮겨왔을 뿐 직장은 그대로여서 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시간이 허락할지도 걱정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시골로 온 이유인 몸을 쓰면서 살기 위해서는 적게라도 농사를 짓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행운인지 불행인지는 모르지만 마침 집에 딸린 과수원이 하나 있어서 먹는 채소 정도는 얼마든지 키워 먹을 수 있지만 과수원을 경작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결국 우리는 농사를 짓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만병의 근원이 몸은 쓰지 않고 머리만 쓰는 삶에서 온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적당히 몸을 쓰는 삶이 더 건강한 삶이라는 것은 짧은 시골 생활로도 얼마든지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전에 요즘 손과 발을 쓰면서 일을 하는 건 아프리카에서나 있는 일이라는 어느 정치인의 말이 밭에서 벌레에 물려가며 손발을 쓰고 일을 할 때면 문득문득 떠올랐지만, 한국의 많은 사람이 손발을 쓰면서 일을 하고 있고 그 삶이 우리의 정신과 신체를 건강하게 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곡란골에 들어와서는 그렇게 좋아하던 독서가 텃밭의 일보다 뒤로 밀렸다. 얼굴과 손발이 햇볕에 검게 탔지만 그만큼 나는 더 건강해졌을 것이라고 믿는다.
천영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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