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려운 한일관계

발행일 2021-09-22 14:13:44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비교적 잠잠하던 일본에 대한 국내 관심이 집권당인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다시 커지고 있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의 경우, 다수당의 총재가 총리직을 수행하게 되니 당연히 자민당 총재 선거가 가장 큰 정치 이벤트가 된다. 이웃나라이기도 하지만, 과거사 문제와 수출 규제 등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도 새로운 자민당 총재가 누가 될 것인지에 따라 한일 관계의 향방도 결정되기 때문에 당연히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본이 새로운 총리를 맞아 한일 관계도 정경분리(政經分離)의 원칙이 지켜지고 조금이나마 미래지향적이고 호혜적으로 변화했으면 하는 마음에는 변화가 없다. 하지만, 고노 다로(河野太郞) 행정개혁담당상,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총무상,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자민당 간사장 대리 등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한 4명의 후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런 기대가 실현되기까지는 좀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한일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는 것이 노다 자민당 간사장 대행이지만, 파벌이 없는 정치인으로 파벌정치로 유명한 일본의 정치 환경을 고려해보면 당선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진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사과를 담은 고노담화로 유명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내각관방장관의 장남인 고노 다로 행정개혁담당상도 마찬가지다. 표면적으로는 고노담화를 계승한다 발표했지만, 자민당 내 지지 기반이 결코 압도적이라고 할 수 없는 그에게서 개혁적인 변화를 바라기는 힘들다. 다른 2명의 후보들은 더 살펴볼 것도 없다. 우리 입장에서는 그저 최소한 지금보다는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길 바라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전에 먼저 생각해볼 것들이 있다.

그 동안의 갈등을 통해 한일 양국은 과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부터 살펴보면 아마도 정치적인 이해득실(가장 크겠지만)을 제외하고 가장 큰 문제는 한일 양국 간 교류가 축소균형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무역과 투자는 물론 인적 교류에 이르기까지 경제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양국 간 교류는 축소돼 왔다는 점은 굳이 수치를 밝히지 않더라도 잘 알려진 사실이고,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런 상황을 더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하겠다.

양국의 핵심적인 이해가 걸린 전지구적인 현안에 대해서도 이런 상황은 마찬가지다. 먼저,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경제의 블록화와 자국우선주의, 안보화 등은 물론이고 GVC(글로벌 가치사슬)의 변화 등에 대한 양국의 공동 대응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지금까지 양국은 기존의 글로벌 공급망으로부터 큰 혜택을 받아 왔지만, 이제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개별 대응과는 별도로 공공 대응하는 것은 양국의 핵심 이해를 지키기 위해 더 효율적이고 당연한 일이다.

최근 급부상한 경제·사회의 탄소중립화 이행과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차세대 자동차 및 부품, 신재생에너지 등 관련 신산업과 신기술 및 신시장 확보를 위한 경쟁은 불가피하지만, 협력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예를 들면, 탄소세나 탄소배출권시장처럼 시장메커니즘을 이용해 탄소중립을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 경제(산업)·사회(에너지 수급) 구조가 유사한 것으로 평가받는 양국 간 협력은 그야말로 호혜적일 수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경제의 디지털화 대응 역시 크게 다를 바 없다. 기술과 표준, 산업, 시장, 국제교역 규범 등 글로벌 경제 활동 전반이 시시각각 새로운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이 때에 글로벌 차원에서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지 못하게 되면 경쟁우위의 약화는 물론 국익 훼손도 감수해야 한다. 문제는 특정 국가나 기업이 단독으로 이런 변화를 주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의 디지털화라는 변화에도 한일 양국은 함께 대처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외에도 많은 사례가 있겠지만, 여하튼 오는 29일이면 새로운 일본 자민당 총재 겸 총리가 결정되는 만큼 한일 관계에 있어서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길 바란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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